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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 10건중 1건 검사가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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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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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2014년 1월 19일 오전 11시께 대전에서 박모씨(당시 66세)의 변사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아들(38)이었다. 자다가 깨보니 아버지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고 평소 거동이 불편한 부친이 계단을 올라오다가 넘어져 다친 것 같다고 했다.

검안 의사도 실족사로 추정했다. 수상하다고 느낀 대전지검 당직검사는 현장에 나갔다. 루미놀 시약으로 집안 곳곳의 혈흔을 검사하고 아들과 면담도 했다.

머리에 난 상처의 위치는 실족사로 보기 어려웠다. 방 안에 있던 '효자손'에서 박씨의 혈흔이 나왔다. 아들은 피의자가 됐다. 평소 아버지를 폭행하고 멍든 모습을 촬영하는 등 학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아들은 신고 다음 날 잠적했다가 3주 만에 붙잡혔고 결국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형사부 검사들이 바빠졌다. 변사사건 현장에 직접 나가 검시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검시는 사망에 범죄 혐의가 있는지 밝히기 위해 시신과 주변 현장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절차다.

4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변사사건 2만8255건 중 10%인 2838건을 검사가 직접 검시했다.

몇 년 전까지 검사의 직접검시율은 4%대였다. 2013년에는 3만1134건 중 검사가 4.1%(1273건)만 현장에 나간 것에 비하면 2년 사이 배 이상 늘어났다.

형사소송법은 '변사자 또는 변사가 의심되는 사체가 있으면 검사가 검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해 3만건 정도 접수되는 변사를 모두 검찰이 직접 검시할 수 없어 대부분 경찰에 맡겨왔다.

검찰의 직접 검시 강화는 재작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눈앞에서 놓친 실책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검사가 현장에 나갔다면 단서를 찾을 수도 있었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검사로 사망 사실이 확인되기까지 40여일간 전남 순천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씨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검은 2014년 10월 '변사에 관한 업무지침'을 고쳐 신원이 불분명하거나 타살이 의심되는 변사, 대규모 인명사고 등은 원칙적으로 검사가 직접 검시하기로 했다. 필요하면 현장 검시소도 설치한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경찰을 수사지휘하는 형사2부와 강력사건 전담인 형사3부 검사들이 24시간 당직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박씨 사건처럼 검안의사도 법의학 전문가가 아니면 사인 규명의 실마리를 놓치기 쉽다. 경찰 과학수사 부서에 검시조사관 100여명이 활동하지만 임상병리학·생물학 등 전공자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지난해부터 법의학자 26명으로 법의학 자문위원회를 꾸려 초동수사 단계부터 검시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현직 의과대학 교수들로 연구와 강의·부검 등이 본업이어서 현장에 제때 출동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법의학계는 경찰관과 검사 등 비전문가가 주도하는 현행 검시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사 목적을 최우선에 두고 타살 혐의점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는 억울한 죽음이 묻힐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검시관(coroner)이나 미국 여러 주의 법의관(medical examiner)은 수사기관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망 원인을 규명한다.

한 법의학 교수는 "경찰·검찰의 지식과 경험에 따른 범죄 연관성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비전문가가 사안을 보고 전문가를 부를지 결정하는 꼴"이라며 "사인 규명과 시신 관리를 규정한 별도의 법 체계와 법의학 전문가가 참여할 제도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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