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허진규 “기술개발을 하다 보면 난 더 기다릴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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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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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60)

덕명 허진규 일진그룹 창업자[사진=일진그룹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기업이 가야 할 원칙과 정도(正道)를 지킨다면 언젠가 상식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89년 10월, 일진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앞서 1985년 일진그룹은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자 한국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GE는 일진그룹에게 개발을 포기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종용했다. 갖가지 방해 속에서도 일진그룹은 1987년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자 GE가 일진그룹이 추진해 온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 공장에 대해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신청한 것. 이후 양사는 6년여간 미국 법정에서 치열한 재판을 벌였다. 덕명(德明) 허진규 일진그룹 창업자는 이렇게 말하며 뚝심있고, 당당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1994년 4월 GE는 마침내 소송을 포기하고 일진에 화해를 제의해 왔다. 이 소송전은 지금까지 ‘골리앗을 이긴 다윗’으로 비유되며 재계에 회자되고 있다.

덕명의 경영철학은 일진의 '일렉포일' 개발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4년 덕명은 당시 전량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던 ‘일렉포일’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쌀‘이라면 ’일렉포일’은 ‘전자산업의 논과 밭’"이라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이후 제품 불량을 모두 잡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 무려 13년이 걸렸다.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도 덕명은 절망하지 않고 개발진들을 믿고 함께 고민하며 긴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기술개발을 하다 보면 난 더 기다릴 수 있는데 직원들이 먼저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실패한 기술도 축적이 되고 다른 식으로 응용하면 훌륭한 기술이 되는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1968년 서울 노량진 집 앞마당에 주물가마 하나를 두고 직원 두 명과 일진그룹의 모태인 일진전기를 창업한 덕명은 48년 만에 종합 중전기 기업 ‘일진전기’와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일렉포일 전문기업으로 2차 전지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진머티리얼즈’, 터치패널과 발광다이오드(LED)용 사파이어 웨이퍼 전문기업 ‘일진디스플레이’, 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기업인 ‘일진다이아몬드’, 심리스 강관 등을 생산하는 ‘일진제강’ 등 12개 주요 계열사를 포함, 국내외 약 30개 법인이 속한 일진그룹으로 키워냈다.

평셍의 취미가 “기술개발이다”고 말하는 덕암은 “기술개발에 대해 항상 직원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첫째는 하이테크로 가라, 둘째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지 말라, 셋째는 시장성이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 넷째는 쉽게 제품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 다섯 째 특허를 보호하라 등이다”라고 했다. 이는 △첨단기술 원칙 △독창기술 원칙 △상용기술 원칙 △제품화 기술 원칙 △기술보호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덕암은 창업 20주년 기념식에서 “일진이 추구하는 미래의 기업상은 대기업이 아닌 최고의 기업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최고의 기업이란 기술개발과 제품생산에서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로, 결국은 기술우선주의를 전제로 하는 기업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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