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단한 선입견은 지난해 영화 ‘암살’이 1270만 관객을 모아 역대 흥행 성적 7위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를 신념에 따라 살았던 청춘, 시인 윤동주의 짧은 삶을 깊이 있게 그려낸 영화 ‘동주’ 역시 115만 관객을 기록한 데 이어 미국 5개(LA, 시카고, 워싱턴 DC, 애틀랜타, 댈러스) 도시에서 개봉을 확정했다.
일제 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는 앞으로도 줄줄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관객과 만나는 작품은 13일 개봉하는 ‘해어화’다. 최고의 가수를 꿈꿨던 기생 소율(한효주)과 연희(천우희), 당대 최고의 작곡가 윤우(유연석)의 이야기인데, 소율과 연희가 예인이 되기 위해 자라온 ‘대성 권번(일제강점기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과 세 남녀의 주 무대가 될 ‘경성 클럽’을 통해 전근대적 문화가 태동한 1943년도 경성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소품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의 소품들은 중국 등 해외에서 수급했으며, 구하지 못한 경우 무형문화재 전문가를 통해 제작했다. 음악을 소재로 한 만큼, 1940년대의 음반 형식인 SP판을 재현해내기도 했다.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가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격변기였던 만큼 영화에서 다룰 만한 소재가 많다는 분석이다. ‘해어화’의 박흥식 감독은 “일제강점기를 살던 개인들은 혼재된 문화 속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기에 영화로 다룰 소재가 많다”며 “불행의 시대다. 불행한 시대, 불행한 공기가 우리 조상들에게 미친 영향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미장센도 빼놓을 수 없다. 맥고모자를 쓰고 맥주를 마시며 재즈 음악에 몸을 맞긴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활보하고, 전차가 도심을 가로지르는 휘황찬란한 남촌과 초가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비참하게 남루했던 북촌이 빚어낸 이질적인 면모는 감독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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