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방송통신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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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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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일준 SO협의회 정책분과위원장

 

최일준 SO협의회 정책분과위원장

A는 낡은 휴대전화를 바꾸기 위해 통신사 대리점을 찾았다. 단말기 종류도 수십 가지이고, 어떤 요금제가 그에게 유리한지 매대 앞에 서서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머뭇거리는 A를 대상으로 점원의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가족들이 어떤 이동통신사에 가입했는지, 인터넷이나 방송 상품은 뭘 이용하는지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계획에 없던 결합상품까지 경우의 수로 넣다 보니 더 복잡하다. A에게 알파고급 상품추천 알고리즘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할은 대체로 판매원의 몫이다. 이런저런 상품들이 소개되지만 ‘가족이 함께 휴대폰을 쓰면 인터넷이나 유료방송은 거의 공짜로 쓸 수 있다’는 말이 가장 솔깃하다. 대략적인 요금이나 약정기간 등의 정보를 듣고 약관에 있는 깨알 같은 글씨는 보는 둥 마는 둥 사인한다. 많은 이들이 경험해봤음직한 결합상품 가입 과정이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TV상품 등을 묶어 판매하는 결합상품은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많은 고객이 가입한다. 하지만 결합상품 이용자가 증가하는 만큼 부작용도 늘어났다. 복잡한 결합상품 이용약관을 제대로 따져보지 못하고 가입한 사람들은 상품별 할인이나 약정 기간을 뒤늦게 파악하고 난감해할 때가 많다. 더욱이 고가의 휴대전화에 TV상품이 끼워팔기 사은품으로 전락해버린 것도 큰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3월 31일 ‘결합판매 금지행위 세부유형 및 심사기준(고시)’ 개정안을 의결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개정을 위해서 방송시장을 걱정하는 업계와 정책 실무자들이 정부와 국회, 마지막 관문인 공정위와 규제개혁위원회를 상대로 기나긴 시간에 걸쳐 이해와 설득작업을 해왔다. 방통위에서도 이번 개정안이 경쟁을 제한하거나 혜택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결합상품의 미끼로 전락한 방송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수월치 않았다고 한다. 이번 개정안에는 결합상품 할인율은 물론, 구성 상품별 할인율도 명시하도록 했다. 결합상품 약정기간도 이용자가 충분히 인지하도록 의무적으로 통지하게 했다. 적어도 결합상품 이용자의 피해 가능성을 대폭 줄이는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고시에 대해 100% 만족하지 못한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결합판매 할인범위나 동등결합 실현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이번 고시가 현재의 결합상품에 대한 문제를 모두가 인식하는 첫걸음이기에 업계에서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고시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실천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고시가 수정 혹은 새로운 제도가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 측면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동통신에 인터넷이나 방송상품을 끼워 판 것이다. 케이블업계는 방송이나 인터넷 자체의 경쟁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의 시장지배력이 전이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를 경우 모바일을 가진 통신사업자들이 방송통신시장을 모두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 유선부문에서 그나마 경쟁의 축으로 활약해 온 케이블TV는 근원적으로 모바일이 없기에 시장에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경쟁의 장과 틀을 만드는 데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정부는 모바일없이 경쟁하는 케이블업계를 위해서는 동등결합 등과 같은 특단의 조치도 취해서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방송통신 이용자 후생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장지배력의 전이나, 자본의 힘이나 크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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