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초연에서 어쩔 수 없이 발견되는 엉성함만 눈 감아 준다면 '마타하리'는 꽤 그럴듯한 작품이다. 특히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 가운데 팔할 이상이 투입된 무대 세트는 환상적이다 못해 압도적이다. 뮤지컬에 막 흥미를 느낀 초심자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옥주현-김소현, 류정한-신성록-김준현, 엄기준-송창의-정택운 등 화려한 스타들이 합류한 '마타하리'는 뮤지컬계 블록버스터라 할 만하다. 약 4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한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은 작품에 의의를 더한다.
이런 화려한 배우들이 월드 프리미어를 지향한 화려한 무대 세트에서 뛰어노는 것을 보는 경험은 짜릿하다. 1800년대 후반 예술가와 노동자, 귀족과 사교계 명사들이 매일 같이 뜨거운 밤을 보냈던 음악홀 물랑루즈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원근법으로 비장함을 구현한 사격장 풍경까지. 아낌 없이 투자한 제작비의 성과가 무대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런 수준 높은 무대 세트는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독일의 디자이너들을 모아 블라인드 오디션을 개최, 오직 실력만으로 책임을 맡을 인물을 선정하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탄생했다. 눈 앞에서 주인공 마타하리의 방이 기차로 변신하고, 다시 기차가 베를린의 한 기차역으로 바뀌는 걸 보고 있자면 이 작품이 뮤지컬이라는 생각조차 잠시 잊게 된다.
배우들은 물론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뮤지컬 '레베카' 지방 공연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배우 엄기준은 피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지난해 10월 막을 내린 뮤지컬 '엘리자벳' 이후 약 반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신성록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야망을 지닌 라두 대령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다만 플롯이 2% 아쉬운 게 흠이다. 165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지만 결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뚜렷한 무언가가 없다. 구색은 갖췄으나 요소요소들이 왜 반드시 작품에 들어갔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물랑루즈의 최고 스타이자 이중스파이라는 오명을 쓴 마타 하리라는 캐릭터는 매혹적이지만 그가 비극적 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오랜 시간 준비했다 해도 작품은 비로소 무대에 올려졌을 때 탄생하는 법이다. 이제 '마타하리'는 겨우 일곱 걸음을 떼었다. '마타하리'가 '완성형 뮤지컬'이 아닌 관객과 호흡하는 살아 있는 작품으로 거듭나 오래오래 전 세계에서 사랑받길 기대한다.
165분. 만 7세 이상.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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