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루 빨리 고가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로만손은 1996년 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1988년 4월 회사 설립 직후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 1990년 1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받은 지 6년 만에 10배 규모로 확장한 것이다.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기쁨도 컸지만 그만큼 김기문 로만손 창업자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동안 그는 수백 개에 달하는 시계 샘플을 넣은 가방을 들고 1년에 150일 이상을 직접 해외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즉 ‘브랜드’는 여전히 로만손의 고민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로만손 제품은 중저가 브랜드로 취급받았던 것. 최고 명품인 스위스 시계와 일본 시계에 비해 저평가돼 있었다. 수익이 적고 불황이 찾아오면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이 바로 중저가 브랜드의 특성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제품과 함께 ‘브랜드’를 수출해야 한다.” 창업 후 늘 기술력 향상과 디자인 개발을 최우선의 경영목표로 삼아온 김 창업자는 회사가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고가 브랜드’를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엘베(ELEVE)’였다.
엘베는 다이아몬드, 골드, 첨단 세라믹 신소재를 사용한 고급시계다. 초박형 슈퍼 슬림 디자인을 기본형으로 매우 화려한 사파이어 크리스탈, 큐빅 등을 정교하게 사용했다. 엘베는 로만손이 개발한 기술을 응용해 ‘천연 자개 다이얼’이라는 기법을 적용했다. 천연자개로 만들어진 다이얼은 은은하고 신비한 빛을 발하며 한껏 품위를 높여줬다. 스위스 시계 기술자들도 기발한 발상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김 창업자는 해외시장 소비자들에게 ‘엘베’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조립라인을 스위스로 정했고, 스위스 상공회의소의 승인까지 받았다. 엘베는 스위스 현지에서 조립돼 전 세계 시장으로 팔렸다.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시계산업을 시작한 한국이 시계의 본고장인 스위스에 OEM을 주는 위치에 올랐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김 창업자는 1998년 스위스 유명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새로운 CIP(기업 이미지 통합)를 단행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모든 기업들이 어려웠던 상황에 10억 원 이상을 투입하는 것이었으니 당시로선 무척이나 결정을 내리기 힘든 투자였다. 그러나 김 창업자는 밀어붙였고, CIP를 통해 ‘로만손’ 브랜드 가치가 껑충 뛰어오르며 투자의 수 백, 수 천 배의 이익으로 돌아왔다.
2003년 4월 로만손은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 시계보석 전시회 명품관에 초대 받았다. 이 명품관에는 롤렉스, 오메가처럼 세계적인 브랜드만이 초대된다. 명품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인지도와 함께 기술위원회를 통과해야 하고, 50개국 이상으로 수출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확인서까지 첨부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당시까지 아시아에서 초대받은 업체는 일본 세이코와 시티즌 뿐이었는데, 로만손 세 번 째, 한국기업으로는 최초로 명품관에 들어갔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맡은 뒤 경영에 복귀한 김 창업자는 위축된 시계사업 부활을 위해 다시 해외 출장길에 나섰다. 그는 “시계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반드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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