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코리아]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예술가는 죽지만 고전은 영원해…인류에게 감동 주는 창작물 만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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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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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문화융성의 핵심은 예술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 즉 창작에 있다"며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내일의 고전'을 만들어내는 학교로 한예종을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고색창연한 방 분위기와 의자 깊숙이 앉아있는 근엄한 표정의 어른. 대학 총장실 하면 으레 떠오르는 모습이 아닐는지. 

안이 들여다보이는 출입문을 슬쩍 열자마자 흰 색 바탕에 파란 색 도트무늬 셔츠가 도드라진 신사 한 명이 웃으며 걸어 나온다. 아차, 대학 총장에 대한 기자의 선입견은 벌써 깨졌다. "길은 늘 뒤에 있는 법이지요. 개척하고 나면 만들어지니까요."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으려 애쓴다는 김봉렬(58)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이다. 

대학생들에게 1,2월은 그나마 편한 시기일지 모르지만 대학 관계자들에게는 그 어떤 때보다 바쁜 시기다. 인프라 구축, 학사 계획, 프로젝트 기획 등 한해 살림살이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지난달까지 올해 역점 사업 구상 등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는데, 최근 건강검진 결과 몇몇 수치들이 좋지 않게 나와 이제는 건강에도 신경을 쓰려 한다"고 지난 3개월을 돌아봤다. 

김 총장은 지난 2013년 9월 한예종 제7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그는 '중창'(重創)의 정신을 강조하며 한예종의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그는 "중창이라는 것은 기존의 예술 성과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더 나은 미래를 쌓아가자는 것"이라며 "예전엔 유학을 가지 않고도 세계적 예술가를 만드는 '높이 경쟁'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깊이'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예술은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중요한데, 특히 정치·사회·경제 등 다른 분야와도 교류를 넓히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봉사의 기회를 갖는 등 예술의 확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한예종이 '입체적인 학교'로 발돋움하길 바라고 있다.

그의 예술 철학이 학교에 뿌리내린 결과일까, 지난해 한예종은 음악, 무용 등 국제 콩쿠르에서 재학생 200여 명이 입상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교육 공간도 대폭 늘었다. 작년 개관한 대학로 캠퍼스는 예술영재교육원, 교수학습지원센터 등 사회교육을 활발히 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대학 본연의 임무인 학생 교육은 물론이고 교수법, 교수환경 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또한 한예종 산하 6개 원이 각자의 경계를 벗어나 융합예술 창작을 할 수 있도록 지난해 11월 융합예술센터도 만들었다. 여기에서는 학생들과 외부 아티스트 등이 함께 예술-과학기술-인문학의 융합을 시도한다. 김 총장은 이런 변화를 "한예종의 예술 스펙트럼이 X(엑스)축에서 Y축, Z축 등으로 확장해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향(向) 중국 프로젝트' 가동…국내외 교류 통해 예술시장 넓힌다
최근 영국 글로벌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세계 대학 학과별 랭킹' 공연예술 부문에서 한예종은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46위를 차지했다. 이 랭킹에 한국 대학이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순위가 좋은 대학임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겠지만, 상대적으로 '더 나은 학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김 총장은 대뜸 "(그 결과가) 섭섭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시아권 대학 가운데에서도 유일한 순위 진입이었지만 못내 아쉽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 학생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국제적 예술단체에 취직도 많이 하며 순위 상승에 기여를 많이 한 만큼 더 높은 순위를 내심 기대했다"고 속내를 비쳤다. 사실 대학 순위는 평판도 또는 인지도가 상당히 중요한 평가 요소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그의 애정어린 불만이 이해가 됐다.

예술가들에게는 창작활동을 펼칠 무대가 필요한데 국내 예술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김 총장은 세계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향(向) 중국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준비 중이다. 그는 "중국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우리에게 큰 시장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한중 양측에서 교류에 적극적인 학생들을 교환하고, 더 나아가 양국의 예술 전문가를 육성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 대학들은 한국과 달리 분야별로 학교가 나눠져 있는 편이다. 그래서 한예종은 여태까지 부분적인 교류로나마 예술시장을 개척해 왔다. 김 총장은 "이런 교류를 통해 앞으로 중국에는 오케스트라가 1000여 개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보며 "학교에 중국어 과목도 개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우리의 경쟁 상대를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한정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그들의 시장은 성장을 다 했고, '선진국이기 때문에 무조건 배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곳에 눈을 돌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시장을 이용해 아시아의 큰 힘이 옳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단순한 취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고급 문화를 전파해서 다같이 커나가자는 게 이 프로젝트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 "혜택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실력있는 교수들 붙잡는 게 주요 임무"
한예종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국콘텐츠진흥원, 강원도 철원군 등 다양한 파트너들과 여러 주제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보통 대학은 대학끼리 협약을 맺는 편인데, 한예종은 이런 점에서 이례적인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김 총장은 "우리도 해외 100여 개 대학과 교류를 한다. 그런데 여느 대학들과 달리 지자체, 기업 등이 우리에게 먼저 업무협약을 하자고 연락을 해 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류 요청이 쇄도하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그는 "학생들의 수준"이라고 단언했다. 한예종은 실력은 물론이고 예술에 대한 진정성이 유다른 이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오는 곳이기에 활동적이고, 자발적인 학생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는 "예술은 끊임없이 사회와 호흡해야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혼자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 독자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나 기업들에 나가는 학생들은 단순히 공연을 해주는 게 아니라, 문화 환경을 조성하고 관광 촉진, 주민들의 삶의 질 제고 등에 기여함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이 한단계 성장하게 된다.

그는 또 "한예종은 국가가 특별히 만든 학교라 상대적인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과정을 통해 이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전남의 한 섬마을에서 개최한 티셔츠 그림 그리기 행사도 그 지역의 어린이들을 훌륭한 예술가로 키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무한한 예술적 경험의 기회를 주고자 기획됐다.  그는 "사업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어린 시절의 예술 경험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자산"이라고 강조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예술의 핵심'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한예종은 최근 배우 오만석 씨, 소프라노 홍혜란 씨, 건축가 최욱 씨를 비롯해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인사들을 겸임교수로 대거 채용했다. 김 총장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초빙 배경을 밝혔다. 그는 "솔직히 신규 임용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자신만의 예술 활동을 위해 교수직을 사임하려는 분들을 말리는 일"이라며 "안숙선, 이창동, 홍상수 전 교수 때도 그랬지만 총장으로서의 가장 큰 임무가 바로 이런 실력있는 분들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며 웃었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 캠퍼스 이전 문제 '뜨거운 감자'…지자체들 유치 경쟁 치열
한예종의 현안 중 하나는 지난 2009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불거졌던 학교 이전 문제다. 한예종 캠퍼스는 서울 석관동과 대학로, 서초동 등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지금부터 최소한 8년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겠지만, 이전이 확정되면 이들 캠퍼스를 하나로 통합하게 된다. 

김 총장은 "'이전'이라기 보다는 '캠퍼스 자체가 없던 상태에서 새롭게 만들 계획을 세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그는 "땅과 건물이 우리 소유가 아니다. 법적으로 말한다면 '초법'적인 건물에 학교가 들어선 셈"이라며 "개교 이래 숙원이 있다면 바로 이 문제일 것"이라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현재는 정부 당국의 이해를 구해 타당성 용역을 시작한 상황이다. 과천, 고양, 세종, 대전, 화성, 구리, 청주 등 적지 않은 지자체들이 한예종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학생과 교직원을 합해 3500여 명이라 큰 규모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예종이라는 위상과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지자체로서는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다만, 김 총장은 한 가지를 염려했다. "교육적인 배려가 앞서야 하는데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되면 교육은 죽습니다."

◆ "등불은 남 비추라고 있는 것…예술가는 창작으로서 문화융성에 기여해야"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인복지재단 등은 '예술인 복지 증진과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다한다. 그렇지만 예술인 대다수의 미래는 여전히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김 총장은 자라나는 예술 꿈나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그는 "입학식 때 주로 하는 말이 '들어오기도 힘들지만 나가는 것은 더 힘들다. 예술은 어차피 배고플 각오를 해야 한다'고 정신무장을 시키는 편"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예술시장은 지원책으로 절대 해결되지 않고, 육성이 우선돼야 하는데 국·영·수 위주의 교육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 그는 '등불'을 예로 들며 "그래도 한예종 학생들은 선택된 자들이다. 남을 비추라고 존재하는 등불처럼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창의적인 창작활동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청와대 영빈관인 삼청장 설계자, 문화재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등 '고건축 전문가'이다. 나들이하기 좋은 이 계절, 그에게 추천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나이가 드니 건물보다는 자연이 좋다"고 하면서도 아끼던 선물을 꺼내놓듯 선암사(순천), 병산서원(안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서울 종로구), 안산공원(서울 서대문구) 등지를 추천했다. 

내년 8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그는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그는 "교수는 대기업의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선택한, 그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며 "총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당연히' 연구와 책 발간 등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또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시아불교건축사 등의 책을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문화융성이 화두인 시대다. 대학과 예술, 그리고 한예종도 어떤 식으로든 문화융성에 기여해야 할 판이다. 그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 창작"이라고 잘라말했다. 예술의 본질을 강조하는 그는 "예술가는 죽지만 고전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창작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한예종의 목표를 한 문장으로 제시했다.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고전 창작소', 그게 바로 한예종의 미래입니다."

김봉렬 총장은?
△1958년 전남 순천 생 △경기고 △서울대 건축학과 학사·석사·박사 △(전)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대표작품 한예종 석관동캠퍼스 마스터플랜(1999) 프랑크푸르트 한국정원(2005) 현대중공업 울산영빈관(2007) 아모레퍼시픽 기업추모관(2009) 국가영빈관 삼청장(2010) 피츠버그대 한국실(2015) △주요 저서 '한국의 건축-전통건축편'(공간사)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1·2·3(돌베개) '한국건축개념사전'(공저, 동녘)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1·2(컬처그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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