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피터팬을 놔주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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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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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이사대우) 


피터팬은 ‘네버랜드’에 사는 영원한 어린아이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충만한 장난꾸러기다. 어릴 적에 만화영화 피터팬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터팬을 꿈꿨을 것이다.

이런 피터팬이 우리 기업들 중에도 굉장히 많다. 이제 막 창업한 벤처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당당한 대기업으로 커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기업들의 성장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에서 딱 성장을 멈춰버리고, 더 이상 대기업으로 커나가기를 싫어하는 ‘피터팬’ 같은 기업들이 많다.

물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대기업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못 되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피터팬 신드롬’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중소기업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소기업에게 주는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혜택에 안주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탄생한 용어가 ‘중견기업’이다. 중소기업보다는 덩치가 크지만, 소위 재벌이라고 불리는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에는 속하지 않는 기업들을 ‘중견기업’이라고 다시 묶어서 이들에 대한 별도의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4000여 중견기업들에 대한 정책 역시 중소기업청의 몫이다. 이처럼 대기업이라고 부르지 말고 ‘중견기업’이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중소기업에 대한 향수가 크고 금단현상이 심각하다. 자연스럽게 통과해야 할 성장통이라고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성장통을 맛보게 된 기업들이 지난 주말 발표됐다. 카카오, 하림, 셀트리온 등이 상호출자가 제한되는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으로 새롭게 지정됐다. 카카오는 인터넷서비스를 하는 기업으로는 처음, 셀트리온은 바이오벤처 기업으로는 처음, 하림은 닭고기 가공업체로서는 처음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카카오는 설립된 지 10여년만에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초고속으로 자산 5조원짜리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박수치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데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분위기는 그게 아니다. 규제와 정책을 ‘옷’에 비유한다면, 그 옷이 너무 크거나 무거워서 이제 막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신규 ‘대기업집단’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규제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348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가진 초대형 그룹 삼성과 5조원에 불과한 카카오가 덩치는 70배가량 차이가 나는데, 삼성과 같은 강도의 규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소위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집단’ 안에서도 양극화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빅5’로 불리는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은 자산규모가 100조원이 넘는다. 이제 막 신규로 진입한 기업들에 비해 20배 이상 덩치가 큰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집단’에 관련된 규제라고 하는 새 옷은 65개 대기업집단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무겁다.

대기업집단이 되는 순간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신규 순환출자, 채무보증이 금지되며 소속 금융·보험사가 가진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받는다. 이밖에 30개 이상의 규제선물세트를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현재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이라는 기준을 10조원 또는 20조원으로 대폭 상향조정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권투에서 덩치가 헤비급이면 그 주먹은 핵폭탄에 맞먹을 정도로 세다. 따라서 헤비급은 헤비급과 경쟁하는 것이 맞다. 물론 라이트급 선수의 파이트머니가 헤비급 선수와 같을 수는 없다. 게임의 룰은 모든 체급의 선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기업의 덩치를 기준으로 규제가 달라지는 것은 필요최소한으로 줄여줘야 한다.

대신 공정거래와 투명한 정보 공개의 의무는 누구에게나 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 중소벤처기업들이 '피터팬 신드롬'에 빠지지 않고 구글이나 애플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고군분투하도록 만드는 길이다. 청년실업자들이 취업하고자 하는 좋은 일자리도 거기서 나온다. 중소기업도 더 투명해지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서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에도 유능한 인재들이 몰릴 것이다.

우리 주변에 무수히 존재하는 피터팬 증후군의 기업들로 하여금 ‘네버랜드’를 벗어나 더 큰 현실의 세계에서도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우리 경제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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