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18일 60살 생일을 맞았다.
한국 나이로는 61세. 태어난 해로 돌아왔다는 뜻에서 ‘환갑’이라고 부르는 올해, 이 회장은 과거 같으면 혼례 때와 맞먹는 큰 생일상을 받아야 하는 날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수명이 길어진 탓에 60세 생일은 오히려 제2의 생을 시작한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올해는 또한 이 회장이 코오롱그룹의 총수에 오른 지 20년을 맞는다. 코오롱그룹과 언론은 이미 지난해 이 회장의 20년을 비중 있게 다뤘지만, 실질적인 20년은 올해가 맞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5년 (주)코오롱에 입사한 그는 6년 만인 1991년 그룹 부회장을 맡으며 5년 간 후계자 수업을 쌓았고, 1996년 1월 29일 서울 리틀엔젤스 회간에서 열린 회장 이‧취임식에서 아버지 이동찬 회장으로부터 직접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당시만 해도 40세 ‘젊은 총수’의 출현은 국내 재계에서도 드물었다. 특히, 섬유로 성장한 코오롱그룹이 선두에서 3세 경영체제를 완성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이 회장으로서도 예상보다 빨리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의 한국 재계는 설립 초기 그룹의 성장을 주도한 1세대 또는 2세대들은 기업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새 시대에 걸맞는 새 인물을 앉혔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석준 쌍용그룹 회장,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 김현배 삼미그룹 회장 등이 이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그룹을 물려받은 이들이다.
세대교체 시대에 걸맞게, 이 회장의 포부도 컸다. 당시 취임사에서 “안정위주인 종전 경영방식에서 탈피해 공격경영을 펼쳐 2000년에 매출액 18조3000억 원을 달성, 10대그룹에 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장의 지난 여정은 쉽지 않았다. 취임 직후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코오롱은 어렵게 잡은 제2이동통신사업(신세기통신)을 포기해야 했으며, 코오롱메트생명보험과 코오롱전자를 매각했다. 신세기통신 지분을 매각 당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팔았다”고 말했던 이 회장은 지금도 회장으로서의 삶에서 침통해 했던 순간이었다고 침통해 한다.
IMF 외환위기를 넘긴 뒤, 이 회장은 계열사간 흡수합병과 분할, 신사업 진출 등 21세기에 맞춘 능동적인 회사로 만들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국내 최초로 강철보다 강한 섬유 헤라크론(아라미드)의 양산에 성공했다. 아라미드를 기반으로 코오롱그룹 첨단부품과 소재산업 중심 기업으로 재편됐다. 코오롱을 견제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인 듀폰은 소송을 제기하며 이 회장은 또 다시 위기를 맞는다. 6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지난해 양사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코오롱측이 거액을 배상해 패배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합의를 통해 코오롱은 아라미드 사업을 확대해 돼 배상액의 수백, 수천 배의 사업 기회를 얻었다.
취임식 때 선포한 경영방침인 ‘하나 뿐인 최고를 지향한다’는 뜻인 으뜸주의(Ond & Only)를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이 회장은 2016년을 맞아 커넥트(Connect)와 퓨처(Future)를 이어 만든 ‘커넥처(Connecture)’를 올해 경영지침으로 선언하고, “변화의 문이 닫히기 전에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0살 생일을 맞은 그는 더욱 더 간절히 미래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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