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소현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을 구하기 위해 대표이사직에 재취임한지 2년 만에 경영권을 포기하고 자율협약 절차를 밟게 됐다.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고 무보수 경영을 펼쳤지만, 우울한 글로벌 해운 업황과 부채 5조6000억원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22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정상화를 위해 회사를 채권단에 맡기는 자율협약을 추진한다.
한진해운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정상화를 위해 자율협약에 의한 경영정상화 추진 작업을 결정했으며 채권단에 오는 25일 신청할 예정이다.
조양호 회장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의 구원투수로 나선지 2주년을 불과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한진해운과 대한항공은 각각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의 자율협약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였다. 저유가와 항공여객 수 증가로 호황을 맞은 항공업계 업황은 좋은 편에 속했다. 이에 한진그룹의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의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해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조양호 회장의 무보수 경영도 해결의 열쇠가 되진 못했다. 그는 “한진해운의 흑자 전환까지는 연봉을 받지 않겠다”며 지난 2년간 경영정상화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영업이익 369억원을 달성하고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당장 급여를 받는 것보다 회사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한항공의 전폭적인 자금지원과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 살리기’ 뚝심에도 5조6000억원에 달하는 빚 부담의 결과는 자율협약 절차를 밟게 됐다.
한진그룹은 ‘수송외길’을 고집한 고(故) 조중훈 회장이 중고트럭 한 대로 시작해 대한민국 대표 육·해·공(陸海空) 기업으로 발돋움 시켰다. 그는 문어발식 경영보다 아는 곳에 집중하고 특히 수송과 관련된 분야에 한 우물을 팠다.
조중훈 회장은 ‘해운왕’을 꿈으로 한진해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당시 그룹 조회에서 그는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나는 그룹의 힘으로 한진해운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조중훈 회장은 ‘경영개선’이 아니라 ‘기업개혁’을 통해서 백지상태에서 재건했다. 한진해운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항공사식 경영’을 도입했다. 항공수송의 생명인 정시성을 해운에도 적용하고, 한진해운의 국내영업을 대한항공이 전담하도록 해 판매증대뿐 아니라, 영업소 인건비와 운영비를 35%이상 줄여나갔다. 매출도 1년 새 1.5배 가까이 늘렸다.
30년 전 조중훈 회장의 한진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지만, 아들 조양호 회장의 한진호는 세계 경제의 장기 불황, 컨테이너 선사들의 치열한 경쟁 앞에 선장이 키를 놓게 되면서 창업이념인 수송보국(輸送報國)도 흔들리게 됐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여전히 종합물류그룹으로서 한진해운을 국가대표 해운사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향후 채권단의 지원을 토대로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 자율협약은 채권단이 이르면 내달 초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오는 25일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을 받은 뒤 내주 안에 금융권 채권기관들에 조건부 자율협약 개시 여부를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채권기관들이 1주일가량 검토를 거쳐 100% 동의하면, 내달 초에는 자율협약이 개시될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진해운의 총 차입금은 5조6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금융권 차입금은 7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공모·사모사채가 1조5000억원, 매출채권 등 자산유동화 규모가 2000억원, 선박금융 등이 3조2000억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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