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실제로 마주한 배우 최유하는 선이 고왔다. "사진보다 훨씬 여성스럽다"고 하자 "그러냐"며 의외란 표정으로 짓는 미소도 예뻤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지 20분이 지나자 그 안에서 중성적인 얼굴이 나왔다. 그리고 또 다시 20분이 지났을 때 테이블 앞엔 푼수끼 다분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시끄럽다가 말도 안 되게 조용하기도 하고.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진짜 제가 뭔지. 저는 주변에서 말해 주시는 저의 면면에 영향을 받는 편이고 그런 말을 듣는 게 즐거워요."
뮤지컬로 연기를 시작한 최유하에겐 표정이 많았다. 단지 말을 하고 있을 뿐인데 CF의 한 장면 같아 보였고, 위에서 살짝 내려다 볼 땐 영화 '아멜리에' 포스터 속 오드리 토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짧은 머리에 매치한 트렌치 코트는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게 했지만 그렇다고 '보이시하다'는 말로 설명하긴 뭔가 부족했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인터뷰에서 최유하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표정을 보여 줬다. 그래서 흥미로웠고 한편 '작품에서 쓰임이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유하는 이런 평가를 짐짓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듣다 "기쁘다"며 웃었다. 뮤지컬계에서 잘나가던 그가 그런 특혜(?)를 내려놓고 방송과 영화에 도전장을 내민 것도 이 이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배우 최유하의 안에는 "누군가를 가해하는 '나'도 있고 피해를 입는 '나'도 있다. '나'는 때로 못돼 보이지만 또 어떨 땐 누군가에게 한없이 당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장르에 선을 그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뮤지컬을 할 때는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거의 해 보지 못 했어요. 그런데 방송이나 영화를 해야겠다 생각한 뒤로는 자주 오디션에 떨어졌죠. 지금도 떨어지고 있고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힘들기만 하다고는 말씀 못 드려요. 제가 즐거워서,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저는 무대에 서는 게 정말 좋아요. 평생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고 배우로 끝까지 살다 죽고 싶어요. 그러려면 장르에 한정을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장르로 저를 옭아매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게 그는 잠시 뮤지컬 숲에서 나왔다. 물론 '완전히' 빠져나온 건 아니다. 그는 최근 창작 연극 지원 사업의 일환인 뮤지컬 콘서트 '언성'에 출연했다. 각종 작품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도 3주간의 '언성' 연습에 성실하게 참여했고 공연도 무사히 마쳤다.
연기하는 곳이 바뀐다고 배우가 가진 결이 변하는 건 아니다. 뮤지컬 무대에서 보낸 지난 10년 여의 시간은 최유하를 더욱 단단한 연기자로 만들었다.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최유하는 "자기를 놓는 게 두렵지 않은" 배우다.
"만약 제가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고 하면 저를 처음 본 제작진, 연출진 앞에서 전 사이코패스로 보여야 해요. 거기서 만약 자신감이 없다거나 부끄럽다거나 하면 캐스팅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죠. 아무래도 전 뮤지컬을 하면서 그렇게 누군가의 앞에서 스스로를 놓는 것에는 익숙해졌으니까요. 그 감정이 작은 것이든 극단적인 것이든 확 놓을 수 있어요. 두렵지 않아요."
최유하는 인터뷰 말미 '일희일비', '새옹지마' 같은 메시지를 연기를 통해 보여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웃음 속에 씁쓸함이 있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화면에서 풀어내고 싶다는 것. 아마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이 배우에게 이 이상 어울리는 연기는 없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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