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70년대, 30대 초반의 젊은이였던 윤윤수 휠라·아큐시네트 회장이 미국 JC페니(J.C. Penny) 한국 지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미국 출장중 본사 바이어가 지나가는 말로 “현재 JC페니에서 판매하는 전자레인지가 일본 제품인데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 한국에서 이보다 싸게 수입할 수 있으면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을 텐데 한국에서 가능할까”라고 물어봤다. 당시 한국에는 전자레인지 제조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윤 회장은 납품만 할 수 있다면 국가를 위해서도 엄청난 이득이 될 거라 생각하고 무작정 바이어에게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삼성전자에 연락을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작은 신생업체였지만 도전적인 자세로 한 번 해보자고 말했다. JC페니에 한국이 전자레인지를 만들 능력이 있다는 입증을 하기 위해 일본 전자레인지를 분해, 개조 후 우리가 만들었다며 미국으로 보냈다. 검사 후 품질에 만족한 JC페니측은 한국의 전자레인지 생산 공장을 보고 싶다고 했다.
본사 엔지니어가 한국으로 탐방 오는 짧은 시간 동안 없던 전자레인지 공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윤 회장은 삼성전자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삼성전자 선풍기 공장을 전자레인지 공장인 것처럼 겉모습만 꾸미고, 일본 전자레인지 수백 대를 수입해 분해하고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조립 전 상태처럼 늘어놓았다. 무모하기 짝이 없었지만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과 전자산업 육성이 국가적 차원에서 절실했기 때문에 설득과 계약에 온 정성을 쏟았다. JC페니는 한국이 전자레인지를 생산할 능력이 있다고 믿고 삼성전자와 계약했다.
계약 후 수출까지 남은 6개월의 기간 동안 윤 회장과 삼성전자는 기술 연구 및 개발에 힘썼다. 삼성전자는 공장과 경험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6개월 만에 전자레인지를 만들어 결국 수출에 성공했다. 전자레인지는 약 3년 만에 1억 달러 넘게 수출했고, JC페니와 삼성전자 모두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다 줬다.
업계에 이름을 알린 윤 회장은 37세였던 1981년 화승그룹 임원(수출담당 이사)로 스카우트 됐다. 미국 출장 중 미국 사람들이 입고 다니던 휠라 티셔츠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윤 회장은 미국 휠라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던 호머 알티스에게 운동화를 만들어 팔 것으로 제안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휠라 본사가 한국에 진출하려고 할 때 조사를 하던 중 윤 회장의 소문을 들었고, 윤 회장에게 휠라 코리아 사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윤 회장은 본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휠라 코리아를 매년 200%씩 매출을 성장시킨데 이어 이후 2007년에는 거꾸로 휠라 본사를 인수했다. 4년 후에는 독일 아디다스와의 경쟁 끝에 세계 1위 골프용품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 등을 보유한 아큐시네트를 인수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윤 회장은 매번 도전을 할 때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성공을 일궈냈다. 비결에 대해 그는 “남들과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명력을 가진 경영 전략은 경험에서만 나온다. 창의적 생각과 전략은 책에 나오거나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휠라 본사 인수 당시 전 세계 지점들에게 브랜드 로열티를 받지 았는 대신 일부를 선불로 받아 인수자금을 마련하고, 아큐시네트 인수 때에는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기존 경영진에 대한 구조조정 없이 자율성을 보장해 준 것은 경험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신의한 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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