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아름 기자 = 본인이 연예부가 아닌 아닌 야구 전문 기자를 할 때였다. 당시 그는 시원시원한 키에 단아한 미소가 참 예쁜 스포츠 아나운서였다. 그렇게 4년 만에 서로 조금은 다른 상황에서 다시 만났다. 바로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 정인영이다. 참 오랜만에 그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서 낯이 익은 분인데...”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싶어 먼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4년전에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이 친절했다.
“오랜만이에요”라고 근황을 묻자 “그런 인사를 들으니 제가 뭘 하며 지내나 싶은 생각도 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라고 웃었다.
“(프리 선언한 뒤)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운동도 하고 친구들을 만났어요. 회사원이었을 때 못했던 것들을 몰아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정인영은 지난해 10월 전 직장인 KBSN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프리 방송인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어떤 점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9to6(9시 출근 6시 퇴근)가 없어졌다는 게 너무 새로워요”라고 운을 뗐다.
“처음엔 적응이 안됐어요. 회사를 다닐 땐 일이 없어도 회사에서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저 스스로 시간을 조율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매일 일을 하다가 안 할 때는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죠.(웃음) 환경적으로 제일 달라진 건 아무래도 주말이 있다는 것 같아요. 예전엔 주말에 진행되는 야구 매거진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했었거든요. 이젠 시간이 날 때 조카를 만나고 있어요. 거의 베이비시터 수준이죠.(웃음) 제가 좀 심각한 조카 바보에요. 하하하하. 그리고 3월부터는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아나운서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렇게 깊은 애정을 느낀 스포츠 아나운서를 내려놓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 선언을 하게 된 계기는 복합적이에요. 마냥 자의적일수도 없고, 또 마냥 타의적일수도 없는 이유죠. 제가 사실 운명론자거든요? 프리를 할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사실 지금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힘들고 생각도 많았고, 그만두는 게 맞는 건가 싶었어요.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정인영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는 여러 가지 소문들이 무성했다. 그러나 정인영은 “그럴 운명이었던 것 같다”며 수많은 소문들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기자 역시 묻지 않기로 했다.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인 그였으니까.
방송인으로 전향하고 난 뒤 정인영은 곧바로 활발한 활동에 돌입했다. 정인영은 지난 3월 MBC ‘일밤-복면가왕’에 출연해 숨겨둔 노래 실력을 뽐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는 방송인 김구라와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과 함께 야구와 관련된 코너를 진행하며 시청자들에게 예능인으로서는 물론 매끄러운 진행 실력까지 어필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좋은 회사를 만난 것 같아요.(웃음) ‘마리텔’은 정말 잘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었죠. 제가 프리 선언 한 이후 야구와 관련된 콘텐츠는 그 코너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준비도 나름대로 했었어요. 허구연 위원님과 김구라 씨는 방송 진행에서도 저보다 굉장히 위에 계신 분들이라 제가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또 반대로 그러다보니 어디서 어떻게 치고 들어가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히기도 했어요. 지금껏 저는 진행을 하는 사람이었지 패널로 나와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 놓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많이 깨달았어요. 그리고 ‘복면가왕’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러워요.(웃음) 회사에서는 앨범도 냈고, 가서 노래 편하게 하고 오라고 했는데 진짜 가수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뛰어난 노래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저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가면을 벗고 노래할 땐 정말 떨렸어요. 전 제가 염소인 줄 알았다니까요.(웃음)”
정인영은 예능은 물론 앨범을 내며 음악까지도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인디 뮤지션 이솔이와 지난 1월 앨범을 발매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정인영이 가수로 전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하하하. 다들 미쳤다고 생각했겠죠?(웃음) 앨범에 관해 오해할 만한 단독 기사가 나갔어요. 마치 가수로 전향을 하는 것 처럼요.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었어요. 제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음악듣고 글 쓰는 걸 좋아하다보니 친구가 가사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죠. 그러다보니 5곡이 훌쩍 넘었어요. 그래서 같이 앨범을 내자고 했죠. 그렇게 의도치 않게 일이 커졌어요. 하하하. 가수로 전향한 건 아니에요.”
처음 도전하는 분야인데도 전혀 어설프지 않았다.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냥 재미있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스포츠 아나운서의 프리 선언은 깨나 자주 있었던 일이었다. 최희, 공서영은 정인영보다 조금 일찍 프리선언을 했었고, 정인영은 동기인 윤태진 아나운서와 함께 프리 선언을 했다. 정인영은 자신보다 일찍 아나운서의 길에 접어 들었고, 또 빨리 프리 선언을 한 선배들을 보며 “현명하게 잘 하시고 계시는 것 같아요”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선배들처럼 끼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고민이 많았어요”라고 겸손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소속사인 씨그널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제가 스포츠 아나운서를 할 때만 해도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직업이었어요. 그래서 정해진 길을 가야겠다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을 했어야 했죠.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스포츠 아나운서 1~2세대는 거의 프리 시장에 나왔고, 같이 고민하고 있는 시기이자 누군가가 길을 만들어서 저 길을 따라가야겠다는 상황은 사실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의 회사(씨그널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 것 역시 수용의 목이 넓고 같이 고민하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서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제가 프리 선언을 했을 때 방향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정인영은 스포츠 아나운서에 대해 “애정이 없으면 버텨내기 쉽지 않은 곳”이라며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정인영은 그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일했다.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일이 힘들어도 상쇄되는 부분이 있었죠. 마치 연애하는 것 처럼요. 하고 싶은 일을하 면서 즐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그래도 행복한 줄 알아야지’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분들이 열광하고 애정을 갖는 건 스포츠만 한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쪽에서 일 하는 건 복이라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즐겁고 행복한 생각만 하다보면 그건 버티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전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그렇게 애정을 가졌던 스포츠라면, 돌아가고 싶기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인영은 “돌아가고싶기 보다는 계속 하고 싶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라고 현답했다.
“제가 지금 회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크게 작용했던 게 스포츠 콘텐츠를 많이 활성화 시키실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 방송과 접목해서 스포츠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같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어요.”
정인영은 스포츠 아나운서를 할 당시 여러 ‘카더라’ 소문의 주인공이 됐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던 기자에게 너털웃음을 짓던 정인영은 “정말 근거 없는 소문인데 저와 비슷한 사람이 찍히면 어느 순간 제가 되어 있더라고요”라며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소문에서 어느 한 선수와 이미 상견례를 했고, 한남동에 신혼집이 있다는 둥의 글들이 있더라고요. 한남동에 신혼집이 있으면 시집가야겠네?라고 생각까지 했다니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인영은 결혼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제가 멀티를 잘 못해요. 연애를 하면 지금처럼 정말 중요한 시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놓치는 게 있을까봐 지레 겁먹어서 연애를 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은 조카가 너무 예뻐서 조카 크는 걸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애기도 많이 낳고 싶은데 또 그렇게 하려면 너무 늦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그렇다면 정인영은 방송인으로 어떤 프로그램 출연이 가장 하고 싶을까.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프리 선언한 야구 아나운서들을 모아서 하는 프로그램 어때요?(웃음) 그럼 야구 팬 아니신 분들은 안 보시려나...하하하. 다양한 기회가 오면 다 해보고 싶긴해요. 여행 다니는 프로그램도 너무 좋아하고 맛있는 것 먹는 프로그램도 좋고요. 예쁘게 하는 예능이 아닌 뛰어다니고 몸 쓰는 예능 해보고 싶어요.(웃음)”
그리고 이내 “아, 저 라디오 DJ를 정말 하고 싶어요. 아나운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1순위가 라디오였어요. 라디오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너무 매력있는 것 같아요. 게스트로 일주일에 한 번씩 출연은 하고 있지만 실시간으로 팬 분들 이야기를 보고 듣는데 진짜 이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더라고요. 그런 게 너무 매력적이예요. 라디오 진짜 하고 싶어요”라고 강하게 어필하기도 했다.
또 함께하고 싶은 연예인에 대해서는 “이국주 씨와 함께 방송해보고 싶어요. 성격이 저랑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제 나이 또래 연예인 분들이 생각보다 많진 않은데 이국주 씨와 함께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과거 ‘야구 여신’으로 불렸던 정인영. 이제 그녀는 ‘야구 여신’이 아닌 사람냄새 나는 방송인이 됐다. 누군가를 만날 때 “괜찮은 사람이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단다. 따뜻함이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정인영은 “치열한 세계에 적응 하느라 인간다운 면이나 따뜻한 걸 놓치지 않게 방송을 했으면 좋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방송인 정인영. 그녀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예전 회사에 다닐 때 ‘최종목표가 뭐냐’고 물었을 때는 ‘스포츠계의 아침마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어요. 스포츠계의 ‘힐링캠프’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꿈이었죠. 그래서 지금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하는 거예요. 어떤 선수가 은퇴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과거를 편하게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예전부터 봐왔던 게 없으면 어렵잖아요. 지금 역시 그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고 그걸 도와주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제가 어떤 사람이기보다 남을 빛낼 수 있는 방송인이 됐으면 해요. 제가 방송인으로 구르고 넘어지고 하겠지만 ‘쟤가 아등바등 하고 있구나’하고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요.”
새침데기 정인영을 상상했다면 이제 그 상상을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 약 1시간의 인터뷰, 아니 수다의 시간은 ‘방송인’ 정인영, ‘사람’ 정인영을 느끼기에 너무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만큼 그와의 이야기는 즐거웠다.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도 그는 긍정적이다. 그리고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또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명확했다. 그래서 드넓은 정글에 맨발로 뛰어들지언정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라디오 DJ에 대한 꿈도, 그리고 ‘스포츠계의 아침마당’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눈앞에 다가온 머지않은 미래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저 우리는 새 출발을 시작한 정인영에게 따뜻한 응원과 위로만 보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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