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야,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그러더라고요. 아니 그럼 저는 맨날 웃어야 되는 거예요? 저도 기분 안 좋을 때 있잖아요. 아니, 저 다운 게 뭔데요."
고충을 털어놓던 얼굴을 기억한다. 사무실 한 켠에서 만두를 먹던 그날. 그 억울한 표정과 말투를 보며 생각했다. '저 순간까지도 연기 같다'고.
김기두는 캐릭터가 강한 배우다. 어딘가 위축돼 보이지만 틈틈이 깐족거리는 걸 잊지 않는, 밉지만 밉기만 하진 않은 그런 인물이 쉽게 연상된다. 연극으로 치면 '멀티맨'(일인 다역, 작품에서 웃음을 주는 개성 있는 인물들이 많다)이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이런 이미지는 김기두에게 선물과 장애물이 동시에 됐다. 덕분에 여러 작품에 출연해 감초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한편 너무 '그런' 캐릭터에만 갇히게 된다는 단점도 있었다. 아마 저 때의 저 투정은 이런 단점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약 1년 뒤 만난 김기두는 변함없는 듯했지만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나다운 게 뭔데?'라는 투정 대신 '배우라면 누구나 다 '나다운 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이해를 갖춘 넉넉한 마음이 체감한 가장 큰 변화였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맡은 기태 역시 기존 작품에서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태는 박도경(에릭 분)의 녹음실 직원으로 군대로 치면 상병이라 일은 제일 잘하는데 또 제일 뺀질대기도 한다. 김기두는 기태를 "툭툭대고 까불지만 밉지 않은 인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귀여운 인물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배우라면 대부분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섹시, 연기파, 카리스마, 악역 등 몇 가지의 스테레오타입들이 배우를 대변하곤 한다.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갖게 되는 게 이미지라면 김기두는 퍽 행운인 셈이다. 그는 지금껏 '또 오해영' 속 기태처럼 나오면 반가운 감초를 도맡아 왔으니까.
"인스타나 이런 데 항상 써요. 전 얼굴로 승부하는 배우라고. 다들 정신 좀 차리라고 하는데 사실 진심이거든요. 얼굴 덕에 이런 캐릭터를 얻게 된 거니까."
특히 최근 들어 얼굴로 인해 덕을 보고 있다는 걸 새삼 더 깨닫게 됐다. 친화력이다. 걷다 보면 유독 길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 건 아마 친근한 얼굴 덕분일 거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나름 장점인 것 같아요. 처음 가 보는 건물 주차장의 주차관리요원 분들까지 제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요. '내가 말 걸기 쉬운 타입인가 보다. 편한 스타일인가?' 그런 생각을 요즘 많이 했어요. 어려운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보다 좋은 것 같아요. 덕분에 모르는 사람들과 금방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거든요. 주위에 10년 넘은 오래된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 보면서 '내가 성격에 장애는 없구나' 그런 생각도 하고. '또 오해영' 배우들도 다 잘해 줘요. 특히 에릭 형이 잘 챙겨 줘서 제가 많이 따라요."
어느덧 연기를 한 지 20여 년이 돼 간다는 김기두는 이제 연기를 대하는 자세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재밌는 연기. 감초 연기가 좋다"면서 이젠 단지 좋은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그 연기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전에는 조금 실수하고 못 해도 귀엽게 봐주고 넘어가 줬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디션을 보러 가면 '다들 칭찬 많이 하더라. 너 잘한다며'라는 말을 듣곤 해요. 유독 감초 연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기분이 좋은데 속으로는 부담이 엄청 되죠. 애드리브를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 보면 '내가 이제 잘해야 되는 나이구나' 실감하기도 하고요.
근데 요즘 달라진 게 하나 있어요. 예전에는 그런 말 들으면 솔직히 졸았거든요(?) 근데 이젠 제 페이스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이번에 '또 오해영' 들어갈 때도 PD님이 '기태가 잘해야 돼'라고 했는데 거기다 대고 '자신 있다'고 답했어요.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대답이죠.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전보다 줄었고 대신 최대한 연기를 편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힘을 주는 게 좋아요. 그러기 위해서 이런 감초 역할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싶어요."
작품을 쥐락펴락하는 영향력은 없지만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웃음과 감동을 안기는. 굵고 짧기 보단 가늘어도 길게 보고 싶은 배우 김기두의 매력을 이제 자신도 깨달은 것 같다. "다른 연기 해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감초가) 운명이다"고 답한 걸 보니 분명 그렇다.
김기두의 맛깔나는 코믹 연기를 볼 수 있는 '또 오해영'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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