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성환·윤주혜 기자 =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시중은행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향후 구조조정 업체 및 업종이 확대될 경우 충당금 추가 적립이 불가피하고, 결국 자본확충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조선·해운사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밝혔지만 구조조정 과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향후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시중은행들 역시 국책은행과 마찬가지로 자본확충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바젤Ⅲ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은행들은 가만히 있어도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인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바젤Ⅱ에 맞춰 발행된 기존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권이 매년 10%씩 은행의 자본인정 한도에서 제외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동시에 겹침에 따라 은행들이 이중으로 자본 조달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됐다. 충당금을 쌓는 만큼 순이익이 줄어들고 이는 결과적으로 자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탓이다.
실제 대우조선해양 등 정상 여신으로 분류된 일부 조선사 대출이 부실로 다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져 추가 손실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한진중공업·현대상선·한진해운·창명해운 등 구조조정을 눈 앞에 둔 5곳을 비롯해 나머지 조선·해운업종 여신을 합치면 시중은행이 추가로 적립해야 하는 충당금이 2조5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은행권 관계자들은 이 정도 수준의 충당금은 벌어들인 순이익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1분기에 부실기업 충당금을 대부분 쌓아두며 선제적으로 대응한 상태다. 이에 따라 국책은행처럼 심각한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해운·조선업에서 시작한 구조조정이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 다른 취약업종으로 확대될 경우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대상 기업이 늘어나면 충당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당장 강화된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가 오는 7월 나오면 시중은행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충당금이 늘어나면 그만큼 순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기자본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충당금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본확충에 나서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분기 말 기준 BIS 비율은 KB국민은행이 15.81%로 가장 높다. 이어 KEB하나은행(15.3%), 신한은행(15.0%), 우리은행(13.5%) 순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당국은 규정상의 기준만 정해놓고 기준 이상으로 얼마를 쌓을지는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기 때문에 은행 상황에 따라 충당금 규모가 다르다"면서 "원론적으로 충당금이 많이 쌓이면 순이익과 BIS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본확충이 필요한 경우도 생길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국내 은행들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자본 조달 시장에서의 사정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무디스는 우리은행의 신용등급을 기존 'A1'에서 'A2'로 한 단계 낮추고 등급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 경남은행 등 5곳에 대해선 기존 등급을 유지했지만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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