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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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1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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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

2006년 우연한 기회로 TV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출연자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는 그 프로그램에서 재정관리 자문역할을 맡았습니다.

출연자 중 친척집의 방 한칸에서 일곱 식구가 모여 살던 가족이 있었습니다. 가장은 외환위기 당시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빚 더미에 앉았고 오랫동안 빚독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때 사업가였던 그는 어깨가 축 쳐지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기가 죽어있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이지만 재기할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중 일곱 명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한 부모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카드사와 대부업체 등의 채권자들은 전화, 우편 혹은 방문을 통해 집요하게 빚독촉을 합니다. 채무자가 견디지 못해 이사한 뒤 주소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독촉이 어려워지면 주민등록이 말소됩니다.

일곱 아이의 아버지는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바람에 아이들을 학교에 취학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만났던 아버지와 최근 언론에 등장한 아버지 모두 우리 사회에서 낙오자로 주저 앉은 뒤 무책임한 가장이 되어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사회 대다수의 아버지들처럼 사업이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밀려날 때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무책임한 가장이 되어 재기하지 못할 수 밖에 없던 원인에는 한번 실패하고 나면 완전히 주저앉혀 버리는 사회구조의 영향이 큽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두 번, 세 번 실패한 창업가들이 성공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며, 구글은 실패를 성공의 필수 요소로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실패는 곧 추락일 뿐입니다. 용서와 관용이 없고 추가적으로 기회를 주는 것에 인색합니다.

물론 실패의 지독한 추락을 견디고 기어코 다시 일어나 우뚝 선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대다수 실패한 사람들은 주저앉은 자리에서 다시 기회의 사다리에 올라서지 못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3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 7명 중 1명 꼴로 실패한 뒤 재기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고 게으르게 살면서 대충 사회에 얹혀 살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재기의 기회를 가혹하게 박탈하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장기연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는 것이 상식이지만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재기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20대 국회에 진출하면서 저는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고 관대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가계부채가 날로 심각해지는 현재, 빚을 권하던 정부와 금융회사들의 책임은 묻지 않고 오로지 채무자에게만 가혹한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생계비가 부족해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버려야 합니다.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하고 방만한 경영을 하는 기업들은 세금으로 기사회생한 후에도 금융소비자 보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기업들과 오로지 주주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혈안인 금융회사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물어야 합니다. 게다가 그동안 상환능력과 관계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대출을 해 온 금융회사들은 채권자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금융회사들의 채권 행사보다 금융소비자들의 인권보호와 새 출발 지원이 더 많이 보호되는, 돈 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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