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에서 꿩으로
장자와 나비
지금까지 <소요유>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요(逍遙)’는 외물(外物)에 의존함이 없는 유유자적함이고, ‘유(遊)’는 노닐다라는 뜻입니다. 장자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천지의 기운에 마음을 싣고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를 ‘소요유’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명리(名利)를 추구하며 다투는 험한 세상사 모두 잊어버리고, 어느 것에도 의지함이 없이 지내는 소요유의 삶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경지를 송나라 때 무문화상(无門和尙)이 시로 표현했습니다.
「春有百花秋有月, 봄에 꽃피고 가을에 달이 밝고,
夏有凉風冬有雪; 여름에 시원한 바람 불고 겨울에 눈 내리는데;
若无閒事在心頭, 부질없는 생각만 마음에 없다면,
俱是人生好時節. 언제나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네.」
앞으로는 <제물론(齊物論)>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장자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서,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지금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물은 인연 따라 서로 변화할 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붕새의 눈으로 내려다보면, 장자와 나비의 분별이 없어집니다. 이를 ‘제물(齊物)’이라고 했습니다.
‘제(齊)’는 '평등하다. 이것과 저것이 하나의 개념으로 통한다'는 뜻이고, ‘물(物)’은 나 자신 밖에 있는 외물(外物)을 가리키기도 하고, 나와 외물과의 관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제물(齊物)’은 <외물과 나, 즉 물아(物我)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하고,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도 꿀 수 있는 것이지요. 삶과 죽음도 4계절의 순환처럼 자연현상일 뿐,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르며, 크고 작은 것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의 한 쪽 면만을 보고 얻은 어떤 주관적 견해인 편견을 지니고 <물아(物我), 생사(生死), 시비(是非), 대소(大小)>를 구별합니다. 이것은 저것보다 크다거나, 좋다거나, 귀하다고 하는 등 이분법적으로 봅니다. 이런 분별의식에서 벗어나야 앞에서 말한 절대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장자의 <제물론>은 매우 유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초나라 때 남곽자기[‘자기’라 부른다]라는 은사(隱士)와 그의 제자인 안성자유[‘언’이라 부른다]와의 대화로부터 시작합니다.
남쪽 성(城)밖에 사는 자기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제자인 언이 찾아갔습니다. 스승 자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책상에 멍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오상아(吾喪我)’라 했습니다.
마음을 속박하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언이가 먼저 ‘천뢰(天籟 하늘이 부는 퉁소소리)’가 무슨 말인지 묻고 스승 자기가 설명합니다. 원숭이의 심리를 묘사한 ‘조삼모사(朝三暮四)’ 그리고 ‘나비의 꿈’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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