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진순현 기자= 아직 두 돌도 지나지 않았다.
저고리에 싸고는 옷깃에 ‘알렉시오 황사영, 마리아 정난주의 子 경한’이라고 쓴 언간(諺簡)을 끼워 넣었다. 언간은 옛 부녀자들이 써서 주고받거나 부녀자들이 받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쓰여진 편지를 말한다.
황경한의 어머니 정난주는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이다. 정난주는 남편 황사영이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뒤 두살 배기 아들 경한과 제주 유배길에 올랐다. 모진 박해로 온몸이 만신창이 된 정난주는 제주에 도착하면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할 경한을 안타까워 했다. 그럴바엔 아예 이 섬, 추자도에서 놔 두고 가자.
아들 경한을 저고리에 싸서 바위틈에 두고 떠났다. 황경한의 후손들은 추자에 뿌리내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한을 내려놓은 예초리 바닷길에는 정난주를 기리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올레길 모진이 몽돌해변을 지나면 ‘황경헌의 묘’가 나온다. 묘 아래엔 ‘황경한의 눈물’이란 샘이 있는데, 어머니를 그리며 흘린 그의 눈물을 닮아 마를 날이 없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올레길에 들어서는 순간 황경헌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추자올레 18-1코스는 상·하추자 17.7㎞의 숲길과 바닷길로, 7~8시간이 걸린다.
상추자도 추자항에서 출발해 상·하추자도 산 능선길과 해안길을 돌아 다시 추자항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아름다운 풍경과 추자도 사람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다.
봉글레산, 묵리고개, 신대산, 돈대산을 봉우리를 여러차레 오르 내린다. 그 중에서도 마치 베트남 하롱베이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나바론 절벽은 이 곳 주민들이 추천하는 최상의 경관 포인트다.
‘나바론’은 1960년대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독일군 야포 진지가 있던 절벽을 닮았다는 뜻에서 지어졌다.
추자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는 돈대산 산책로가 있다. 맑은 날에는 보길도가 보이고 남쪽 섬너머로는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이처럼 뷰가 좋아 해발 164m의 돈대산 정상에선 매년 1월 1일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특히 상추자 끝자락의 다무래미에서 보는 직구낙조(直龜落照-상추자의 서북방에 위치한 거북모양을 한 직구도의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일컬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게 한다. 썰물 때면 앞 섬까지 다녀올 수 있다.
동글동글 몽돌로 어우러진 모진이 해안, 기암절벽의 조화를 이룬 석두머리, 바다 위로 뜬 섬 예초마을 등은 올레길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볼거리다.
올레코스 중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최영 장군 사당이다. 고려 공민왕 때 목호의 난을 진압하러 가던 최영 장군이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 들렀다가, 주민들에게 그물 짜는 기술을 가르쳐 줬다고 한다. 주민들이 이를 기려 해마다 제를 올린다.
천주교 추자공소, 순효각, 영흥리 항일운동비, 엄바위 장승 등은 역사속에 추자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올레길 이야기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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