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20일 취임사에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을 합의한 1992년 양안 회담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만 언급했다. 중국이 집요하게 요구해온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의 수용은 결국 하지 않았다. 다만 '92공식'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92공식의 내용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완급조절에 나섰다.
차이 총통은 이날 타이베이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대도 광장에서 개최된 제14대 총통 취임식에서 "기존 양안의 대화와 소통 기제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차이 총통은 "1992년 중국과 대만을 대표하는 양안 기구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다양한 공감대를 갖고 합의를 이뤘다"며 "이는 상호 이해와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먼저 찾는 것)의 정신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면서 "1992년 이후 양안은 상호 교류와 협상을 통해 거둔 성과를 양안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하며 그동안 구축된 사실과 정치기초 위에서 양안의 평화발전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이번 취임연설에서 양안관계보다는 민생, 경제, 사회정의 등 내정 부문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가장 먼저 사회연금 파산위기, 에너지·자원 부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중심 경제의 한계, 인구노령화 등 대만이 처한 현실을 거론하며 "청년세대를 위한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미래는 정부가 책임지겠다. 신정부가 이를 위해 즉각 행동에 나서겠다고 약속한다"면서 "신 정부에 약간의 시간을 달라. 그리고 개혁의 여정에 동참해달라"고 말했다.
차이 총통은 이에 따른 과제로 경제구조 전환, 사회안전망 강화, 사회 평등과 정의 실현을 지목하며 마지막으로 역내 평화안정의 추구와 양안관계의 적절한 관리를 꼽았다.
차이 총통은 취임 연설에 앞서 총통부내 강당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정권 승계의 상징인 중화민국 국새, 총통 인장 등을 인수한 뒤 내정한 각료들에 대한 임명장을 수여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국립정치대 법학 교수를 지내다 2000년 대륙위원회 주임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입법위원, 행정원 부원장을 거쳐 2008년 민진당 주석에 오른 뒤 지난 1월 대선에서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누르고 압승했다.
취임선서에 앞서 국가 제창에서 차이 총통은 국가 가사중 "오당소종(吾黨所宗·우리 (국민)당을 뿌리로 삼아)"이라는 대목도 전부 불렀다. 과거 그는 국가제창 시 이 대목은 빼고 부르지 않았었다.
그는 특히 국민당 계엄 시기의 민주화 탄압과 관련해 "사회정의를 돌려주는 차원에서 '진상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 (민주화 운동 탄압 등) 과거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취임식은 국군 연합의장대의 행진을 시작으로 대만 400년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만의 빛' 퍼포먼스, 대만의 민주화 운동 과정을 담은 '대만 민주행진곡' 순서로 진행됐다.
취임식은 1970∼80년대 권위주의 체제 시절 대만 민주화와 독립을 염원하는 저항가요로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메이리다오'(美麗島)를 합창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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