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정치 X-파일’은 여의도 정치의 속살을 낱낱이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정치(政治)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엘리트 정치인이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정치는 권력투쟁의 장입니다. 온갖 배신과 끝없이 욕망이 판치는 ‘누아르의 세계’입니다. ‘성인의 고결함’과 ‘짐승의 비천함’이 공존하는 양면적 예술의 공간인 셈입니다.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적 상상력이 궁핍한 오늘날 ‘정치 X-파일’이 사고의 경직성과 획일성을 탈피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 상상력을 통한 우정과 환대의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편집자 주>
독자적 제3 정당에 안착한 국민의당 정당 지지율이 ‘정체 국면’에 빠졌습니다. 특히 야권의 심장 ‘호남 지지율’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 4·13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최대 승자인 국민의당이 시너지효과를 이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주가도 조정 국면에 들어가듯이, 정치 지지율의 상·하 추세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슈의 주기가 짧은 한국 정치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20대 총선에서 ‘뒤베르제 법칙’(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귀결한다는 이론)에 균열을 가한 결정적 원인이었던 ‘전략적 교차 투표’가 특정 상황(선거)이 아닌 일반 정치현장에서는 그 위력이 반감된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더민주 26% vs 국민의당 21%
주목할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시점’입니다. 시점을 파악해 원인을 분석하면, 보편적인 원리에서 논리의 절차를 밟아 특정한 사실을 도출해내는 과정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공공정책 결정의 이론은 정치 현장에서도 통용됩니다.
국민의당과 호남 적자 논쟁을 벌이는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을 보기 전,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지지율의 특성입니다. 지지율에서는 두 가지 지표를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지표인 ‘수치’와 미래 지표인 ‘추세’입니다. 정치 현장, 특히 선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추세입니다. 향후 권력구도를 예측할 수 있는 도구는 수치가 아닌 추세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호남 지지율 추세를 살펴보겠습니다. 표본과 조사 방법이 상이한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를 비교하면, 적잖은 오류가 나기 때문에 같은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율을 비교·분석하겠습니다.
20일 공개된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5월 셋째 주 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 순위는 새누리당(29%) > 더민주(26%) > 국민의당(21%) > 정의당(6%)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주 대비 새누리당은 2%포인트 하락, 더민주는 2%포인트 상승,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동일했습니다. 더민주의 26%는 올해 최고치입니다. ‘없음·의견유보’는 18%였습니다.
◆5월 들어 더민주·국민의당 호남 희비
5월 셋째 주 호남 지지율은 국민의당이 42%, 더민주는 37%를 각각 기록했습니다. 더민주가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음에도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이 5%포인트 앞선 셈입니다. 이제 추세를 한 번 보죠. 4·13 총선 직전인 3월 넷째 주에는 더민주가 33%로, 22%에 그친 국민의당을 이겼습니다. 3월 다섯째 주부터 둘째 주(선거 직전 이틀)까지는 ‘27%(더민주) vs 30%(국민의당)’→‘24% vs 37%’→‘23% vs 37%’로 국민의당이 우세했습니다. 총선 직전 더민주 ‘호남 완패론’이 대두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았습니다.
총선 직후 양당의 호남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4월 셋째 주에는 국민의당이 46%, 더민주는 26%, 넷째 주에는 국민의당이 48%, 더민주 23%였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일어났습니다. 5월 첫째 주 17%포인트 차(국민의당 40% vs 더민주 23%)였던 양당의 호남 지지율은 둘째 주 7%포인트 차(국민의당 40% vs 더민주 33%), 셋째 주 5%포인트 차(국민의당 42% vs 더민주 37%)로 좁혀졌습니다. 국민의당 호남 지지율은 하락, 더민주 호남 지지율은 상승 추세를 기록하면서 적어도 미래 지표에서는 더민주가 우세를 점한 것입니다.
◆연정 전무한 한국 정치…관제야당 논란만
당시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연정(연합정치)론입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후보가 승리를 거뒀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제2버전을 만들자는 주장이 터져 나왔습니다. 일부 계파는 가치 중심의 연립정부 구성을, 일부 계파는 새누리당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습니다.
4월 말에 터져 나온 연정론은 5월 초 야권발 권력구도의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현대 정치에서 연정은 필수입니다. 사민주의가 발달한 독일도 보수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과 사회민주당(사민당)이 가치와 철학을 중심으로 정책연대를 합니다. 우리도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면이 된 만큼, 연정과 협치는 필수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연정은 가치와 정책 중심이 아닌 오직 집권만을 위한 공학적 셈법의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이른바 ‘대마불사식’ 패권적 집권전략입니다. 궁금증이 생깁니다. 국민의당 연정 발언 이후 호남 일부 유권자들은 왜 지지를 거둬들였을까요.
익명을 요구한 한 법대 교수는 “관제 야당 트라우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전두환 철권통치 시절 신군부는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선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를 견제하기 위해 관제 야당을 만들었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을 필두로 ‘민주한국당’과 ‘한국국민당’이 2중대·3중대 논란에 직면했습니다. 이른바 ‘사쿠라 야당’입니다. 국민의당이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연정을 위한 선 과제, 측 가치 연대를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국민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유럽과 같은 연정을 위한 중앙 정치 플랜이 전무합니다. 소통도 협치도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만을 위해 여당과 손잡는다는 것은 호남에 남아 있는 ‘관제 야당 트라우마’에 대한 도전이라는 얘기입니다. 지금도 더민주 지지층 일부는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대표를 향해 ‘새누리당 2중대’라고 비판합니다.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으로 넘어간 조경태 의원은 더민주 시절 내내 ‘사쿠라’ 비판을 받았습니다. 영남권은 1990년 YS의 3당 합당으로 관제 야당 트라우마를 논할 수 없는 판이 돼 버렸습니다. 국민의당 호남 지지율 안에는 이 같은 배제된 호남의 역사가 있습니다.
한편 ‘한국갤럽’의 5월 셋째 주 정례조사는 지난 17~19일까지 사흘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임의걸기)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한 뒤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이며, 응답률은 20%(총통화 5021명 중 1004명 응답 완료)입니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고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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