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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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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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승 양방웅의 노자와 장자 이야기
나비에서 꿩으로

사람이 부는 퉁소소리

<자기가 제자 자유에게 사람이 부는 퉁소소리, 인뢰(人籟) 이야기를 계속한다.>

“대인(大人)의 지혜는 생각하는 그릇이 크고 균형이 잡혀있지. 그래서 하는 말은 뜻이 불꽃처럼 선명하고 아름답게 들린다네.

그러나 소인(小人)들은 그릇이 작고 찌그러져 있으며, 말에는 뜻이 들어있지 않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시끄럽게만 들린다네.

소인들은 잠들면 꿈자리 뒤숭숭하고, 깨어나면 형체가 산만하고, 하는 일마다 남과 다투고, 날마다 마음에 갈등이 쌓인다네. 작은 위험에 부딪치면 안절부절 겁을 먹고, 큰 위험에 부딪치면 넋이 나가버리지.

그러다가도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면 화살이 활을 떠나 과녁을 향해 날아가듯 거침없이 파고들며, 이기기 위해 기다려야만 되는 상황에서는 무슨 맹세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킨다네.

그리고 쇠약해지는 것을 보면, 마치 초겨울 추위 속의 초목이 날로 기력을 잃어가듯, 다시는 원상으로 회복하질 못하게 되지. 결국은 정서가 갇혀버리고 말도 없어진다네. 그러면 이미 노쇠해진 것이고, 심령은 죽음에 가까워진 것이야. 누구도 그의 생기를 회복해 줄 방법이 없다네.

세상만사가 때로는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겁고 우울하고 걱정되고 조급하고 두렵기도 하고 교만하고 도리에 어긋난 일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퉁소구멍에서 나오는 감정의 소리지.

그런 현상들이 아침저녁으로 나타나는 데는 다 까닭이 있으니까 생겨나오는 것이야. 그런 현상들이 없으면 나도 없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도 않는 것이야. 다시 말해, 그런 현상이 곧 나이고, 내가 곧 그런 현상인 것이니, 현상과 나는 서로 가까운 것이야.

그런데 누가 그렇게 되게 하는지는 모른다네. 그런 현상을 주재하는 참 주인이 있는 것 같은데.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네. 하지만, 그가 우리 생활 속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 진실한 존재라는 것만은 분명하지. 우리가 참 주인의 실체를 찾든 못 찾든, 그 주인이 작용하여 나타나는 어떤 현상과 변화에는 조금도 늘어날 것도 없고 줄어들 것도 없는 것이라네.

아무려나, 세월은 말을 타고 마구 달리듯 빠르게 흘러가고, 이를 잡을 수가 없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살아있는 동안 줄곧 일해도 성취된 것을 볼 수가 없고, 일에 쫓기다가 지쳐도 돌아가 쉴 데도 없으니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그래도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말하겠지만, 몸은 노쇠해지고 마음도 허약해지니 이것이 가장 큰 슬픔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삶이란 것이 본래 이리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미망(迷妄)이란 말인가? 나만이 이런 미망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 중에 미망에 빠져 있지 아니한 사람이 있을까? 만일 모두가 개인의 주관적 견해라는 성심(成心 편견)에 따라 내는 소리를 표준으로 삼는다면, 어느 누구든지 그런 표준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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