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하나금융그룹)가 연장전에서 양말을 벗고 트러블 샷을 한 끝에 우승컵을 안은 1998년 US여자오픈. 당시 박세리와 우승경쟁을 벌인 선수는 태국 출신으로 미국 듀크대생이었던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3년 2월 태국에서 열린 미국LPGA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 태국의 한 ‘무명’ 선수가 71번째홀까지 2타차 단독 선두를 달렸다. 마지막 홀은 파5여서 그의 우승은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트리플 보기를 하며 이미 경기를 마친 박인비(KB금융그룹)에게 우승을 헌납하다시피했다. 태국 선수 최초의 미LPGA투어 우승도 날아가버렸다. 그는 바로 아리야 주타누가른이다.
주타누가른은 30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트래비스 포인트CC(파72·길이6709야드)에서 끝난 미LPGA투어 ‘볼빅 챔피언십’(총상금 130만달러)에서 4라운드합계 15언더파 273타(65·68·73·67)로 재미교포 크리스티나 김을 5타차로 여유있게 따돌리고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19만5000달러(약 2억3000만원).
김효주(롯데)는 합계 7언더파 281타로 공동 6위, 전인지(하이트진로)는 5언더파 283타로 공동 11위, 김세영(미래에셋)과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4언더파 284타로 16위를 각각 차지했다.
주타누가른은 이달초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에서 투어 첫 승을 올린데 이어 지난주 열린 킹스밀 챔피언십과 이번 대회까지 3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했다. 태국에서 별명이 ‘메이’인 그는 5월에 열린 투어 세 대회를 휩쓸었다. 투어 데뷔 후 첫 3승을 연속 우승으로 장식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투어에서 3개 대회 연속 우승이 나온 것은 2013년 박인비(KB금융그룹) 이후 두 시즌 만이다. 박인비는 당시 6월 열린 LPGA 챔피언십, 아칸소 챔피언십, US여자오픈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주타누가른은 올시즌 투어에서 맨먼저 3승 고지에 오르며 세계 톱랭커 반열에 들어섰다. 8월 열리는 리우 올림픽 여자골프에서도 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주타누가른의 놀라운 기세는 강해진 멘탈 게임, 남자 못지않은 장타력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는 3년전의 ‘아픈 기억’ 외에도 지난 4월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최종일 후반 중반까지 2타차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 세 홀에서 3타를 잃은 끝에 리디아 고에게 우승을 내주고 4위에 만족해야 했다. 큰 대회에서 두 차례 겪은 ‘시련’이 그의 멘탈리티를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주타누가른은 이번 대회 나흘동안 한 번도 드라이버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파4,파5홀 티샷 평균거리는 257.13야드에 달했다. 웬만한 선수의 드라이버샷 거리를 능가한다. 그의 올시즌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는 267.83야드로 이 부문 12위다. 그러나 이는 수치에 불과하다. 거리를 재는 홀에서 우드나 롱아이언을 잡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드라이버샷을 마음 먹고 치면 290야드를 날린다고 한다. 그와 동반플레이를 해본 김세영은 “나도 장타자축에 들고 렉시 톰슨 등 투어에서 내로라하는 장타자들과 플레이를 해봤지만, 주타누가른의 장타력은 따를 선수가 없다. 남자선수의 거리를 낸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주타누가른은 그 장타력을 바탕으로 이번 대회에서 열 여섯 차례 맞이한 파5홀에서 8언더파(이글1 버디7 보기1)를 솎아냈다. 그것도 드라이버를 안쓰고 말이다. 3라운드 18번홀에서는 두 번째 샷을 그린 앞에 떨군 후 30야드 거리의 웨지샷을 넣어 이글을 기록했다. 쇼트게임도 나무랄데 없다는 얘기다. 이 대회에서 그는 라운드당 28.5개의 퍼트수를 기록했고, 그린사이드 벙커에 두 차례 볼을 집어 넣었으나 모두 샌드 세이브를 했다.
이 대회에는 열 명의 태국 선수들이 출전해 일곱 명이 커트를 통과했다. 볼빅 볼을 쓰는 포나농 파틀럼과 아리야의 언니인 모리야 등 세 명의 태국선수는 합계 2언더파 286타로 27위를 차지했다.
아리야의 상승세가 지속될 지는 2주 후 열리는 시즌 둘째 메이저대회(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를 보면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그 대회는 박인비가 3년 연속(2013∼2015년)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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