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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이경복 공군 소위.[사진=국가보훈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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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백성흠 공군 소위.[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아주경제 박준형 기자 = 한국전쟁 발발 5일째인 1950년 6월 30일. 북한군은 한강철교 도하를 위해 정찰대를 투입했다. 빠르게 남하하는 북한군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는 항공정찰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우리 군은 즉시 공군에 명령을 내렸다.
당시 수원기지에 있던 이경복 상사와 백성흠 상사는 ‘적들이 한강철교를 이용해 탱크를 도하시킬 것으로 보인다. 적들의 움직임을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은 뒤 한 조로 L-5연락기에 급조한 폭탄 5발을 싣고 출격, 한강철교가 있는 흑석동 상공으로 향했다.
한강인도교를 발 아래로 보면서 한강철교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 북쪽 어귀를 정찰하던 두 사람은 북한군의 대공사격에 피격됐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북한군 탱크 수십대를 발견했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수원기지에 적진의 상황을 무전으로 알렸다.
무전 보고 후 기지에서는 복귀 명령이 떨어졌으나 두 사람을 태운 L-5연락기는 이미 심각한 기체 손상으로 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북한군 탱크를 향해 기수를 돌렸고, 잠시 후 적진에서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이 발생했다. 그렇게 이 상사와 백 생사는 임무 완수 후 장렬히 산화했다.
당시 우리 군은 두 사람의 희생으로 미 공군 전투기의 공격을 유도해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미 지상군 참전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도 확보하면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30일 고인들의 전공을 기리며 두 사람을 6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고인들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됐으며 공군 소위로 1계급 특진도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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