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1]‘자유무역’ 주창하며 평생 헌신한 ‘진정한 무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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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1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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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1)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다음달 31일로 무역협회 설립 7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주력 기간산업은 경쟁국들의 거센 추격과 견제를 받으면서 성장세가 둔화 또는 퇴보하고 있고, 이로 인해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도 감소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무협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목당(牧堂) 이활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정신을 들어보며 ‘수출을 통한 경제입국’ 희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을 휩쓸고 다녔던 기업인들과 함께, 기업인들이 뛸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했던 목당과 같은 무역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경제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아주경제신문은 한국무역협회와 공동 기획으로 1985년 10월 무협이 발간한 전기 ‘목당 이활의 생애’를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연재한다. <편집자주>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지 수일이 지난 어느 날.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이하 무협) 회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정책자문위원회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최고회의가 혁명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을 위한 의견을 듣기 위해 이 회장과 전택보 천우사 회장을 지명해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목당과 전 회장이 최고회의 접견실에서 만난 사람은 박정희 소장과 부관들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 수 일여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기세에 눌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목당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박 소장에게 '무역입국론'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무역을 국시로 하고 기간으로 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영국이 자원을 갖지 못하는 작은 섬나라이면서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무역정책을 채택한 데 있었다. 가공수출에 역점을 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개방정책이 필요하다.”

면담이 있은 지 두 달여 후, 최고회의는 경제발전의 방향과 개발정책 수립을 총괄하는 경제기획원을 설립했다. 경제기획원은 무협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출 우선주의와 개방정책, 보세가공무역 등이 포함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입안, 시행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천에 옮겨진 종합경제개발계획이자 철저한 수출 주도형 경제체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899년 9월 8일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1982년 10월 6일 별세할 때까지 목당의 83세 생애는 무역입국(貿易立國) 한국의 역사와 궤를 함께 했다.

20세 초반 청춘기의 목당은 조국의 폐망을 목격하고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당시로선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일본과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 곳에서 조국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키우는 교육, 경제를 살찌우는 자유무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귀국한 목당은 사재를 희사해 고려대 설립에 참여하는 한편, 1946년 이후에는 유학 시절 신념으로 익혔던 무역입국을 실현하고자 무협 설립에 참여했다. 무협은 그의 인생을 결정지은 중대한 사건이었다. 상무이사로 출발한 목당은 제2~4대, 제8~14대 등 장장 30여 년간 무협 회장을 역임한 뒤 명예회장으로 생을 마칠 때까지 한국 무역진흥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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