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감독이 기억하는 작품 속 최고의 명장면은 무엇일까? 감독의 입장, 관객의 입장에서 고른 명장면을 씹고, 뜯고, 맛본다. ‘별별 명장면’은 배우·감독이 기억하는 장면 속 특별한 에피소드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다. 30번째 타자는 영화 ‘아가씨’(제작 모호필름 용필름·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의 감독 박찬욱이다.
6월 1일 개봉한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흥미로운 것은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와 하녀 숙희(김태리 분)의 관계다. 두 사람은 서로를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싹틔우고 끝없는 신뢰를 내보인다. 이 과정에서 빛났던 것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과 여성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였다. 히데코와 숙희는 사랑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숙희야말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죠. 조금 멍청하긴 해요. 하하하. 자기가 똑똑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속은 거라든지. 그런 행동들에서 어리숙하고 순진한 모습이 드러나죠. 물론 나중에 둘이서 힘을 합쳐서 골탕 먹일 때는 영리한 행동을 하지만요. 참 용감한 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장면에서도 캐릭터의 용감함이 잘 드러나요. 계획을 세우고 들어간 거였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멋지죠. 또 책을 찢는다거나 히데코를 담장 위로 건너가게 해줄 때. 용감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전설적인 여도둑의 딸 숙희. 그의 어머니는 100번 도둑질해서 딱 1번 걸렸고, 딱 1전 죽게 된 명 도둑이었다. 여도둑이 죽고 장물 거래소 보영당에서 자라난 숙희는 소매치기 기술과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는 기술을 배우게 된다. 어느 날, 백작(하정우 분)은 숙희에게 히데코의 재산을 가로채자고 제안하고 숙희는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숙희는 점점 히데코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그를 측은하게 여긴다. 계획에 진척이 없자 백작은 숙희를 몰아붙이고 결국 두 사람은 말싸움까지 벌인다.
“제가 생각하는 숙희의 ‘심쿵 포인트’는 이런 거예요. 백작이 숙희의 손을 자신의 성기에 갖다 대며 화를 내자 숙희는 ‘앞으로는 내 손을 애기 장난감 같은 X대가리에 갖다 대지 말라’며 당차게 걸어나가죠. 특히 이 대사 뒤에 태리가 애드리브로 손을 마구 털어버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심쿵’ 했습니다.”
박찬욱도 계산하지 못했던 김태리의 애드리브. 박 감독은 “그런 행동은 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며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때문에 더 마음에 쏙 든다고 덧붙였다.
“디테일들이 재밌어요. 좋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면 그런 것들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제시한 부분에서 더 좋은 것들을 끌어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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