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IMF(국제통화기금)가 발표한 보고서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 비중이 1% 포인트 증가하면 그 후 5년간 GDP는 연평균 0.08%포인트 감소한 반면 하위 20%의 소득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같은 기간 GDP가 연평균 0.38% 포인트 증가했다”는 것이다. 결국 불평등을 줄이고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위 소득자나 중산층의 소득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불리는 IMF마저도 불평등 완화를 위한 포용적 성장을 강조하다보니 주목을 받았다.
지난 9일 우리나라의 금융통화위원회는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금리에 민감한 채권시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예상했는데,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한 달 전 회의에서는 7인의 금통위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 의견을 냈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 전격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할 줄 몰랐던 것이다. 한 달 만에 180도로 의견이 뒤바뀐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해외변수의 변화다.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를 어렵게 했던 이유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 우려였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크게 저조했고 그에 따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하반기로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하나는 국내변수다. 수출과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본격적으로 조선업 등 주요 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경기침체가 더 심해지기 전에 금리 인하를 단행함으로써 구조조정으로 인한 충격을 좀 덜어보자는 뜻이다.
그 결과, 우리는 기준금리 1.25%라는 사상 초유의 저금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 가깝다. 금리는 다른 말로 하면 ‘돈의 값어치’다. 돈의 값어치가 형편없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눈을 돌려서 주식이나 부동산 등 위험한 상품에 투자해 보려는 심리가 발동하게 마련이다. 최근 전세가격과 주택가격의 상승도 이 같은 저금리 시대의 지속과 관련이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신규 분양시장의 평균 청약경쟁률이 12.7대 1이었다. 수도권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4월 분양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자이는 45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저금리가 경기를 살리는 게 아니라 부동산 버블만 키우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또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작년 말 기준 가계부채는 1203조원에 달한다. 올해 5월 한 달 동안 은행의 가계대출이 6조7000억원 늘었는데, 작년 5월의 7조3000억원에 비하면 줄었지만 재작년 5월의 1조2000억원에 비하면 크게 증가했다. 즉, 저금리 지속에 따라 작년과 올해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가팔라졌다.
기준금리 인하는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는 경기 침체를 예방하고 수출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택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가계부채를 늘리는 등의 부작용도 있다. 구조조정의 측면에서도 금리 인하는 양날의 칼이다. 금리를 낮춰주면 빚이 많은 기업에게는 원리금 상환의 부담을 덜어주니까 숨통을 틔워준다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좀비기업을 늘리는 부작용도 있다.
이처럼 돈을 빌려서 집을 사고, 주식을 사고,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다. 정부의 금융통화정책이 빚을 늘리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버블을 늘리는 방향으로 지속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산을 기준으로 한 빈부격차를 더 키워선 곤란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산 불평등은 점차 소득 불평등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이 금리 인하로만 끝나선 곤란하다.
포용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포용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여윳돈이 주택시장으로 쏠리지 않도록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서민금융과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지원하는 대책도 준비돼야 한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통화정책과 아울러 확장적 재정정책도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그리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뒷받침하는 ‘증세’ 방안도 준비돼야 한다. 아울러 투자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구조개혁 등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중장기 대책도 함께 실행되어야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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