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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상훈 기자]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치열한 광고 경쟁을 벌이는 이곳 전광판에 우리 문화재가 등장한다.
문화재청과 LG전자는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홍보를 위한 후원 약정식을 진행했다. 정도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나선화 문화재청장 등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LG전자는 "우리 문화재 보존·홍보와 관련해 5억3000만원 규모의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후원 내용을 보면 전각이 많고 부지가 넓은 창덕궁 특성을 고려해 궁궐마루를 간편하게 청소할 수 있도록 로봇청소기 10대를 기증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지만, 눈길을 끌었던 점은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우리 문화재 홍보영상을 틀겠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비빔밥이나 막걸리 영상이 선보인 적은 있었지만, 문화재가 내걸린 적은 없었기에 더욱 화제를 모았다.
기업들의 '문화재 사랑'은 LG전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리그오브레전드'(LOL)로 유명한 라이엇게임즈는 지난 2012년부터 총 28억 원을 문화재 보호·환수·전파에 후원했고, 에쓰오일은 2008년부터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을 문화재청과 맺고 천연기념물 보호기관을 지원해 왔다. 에쓰오일은 지난 2일에도 수달, 두루미, 어름치 등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보호를 위해 3억 원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에스원은 목조문화재의 천적인 흰개미를 잡는 '흰개미 탐지견'을 후원하고 있다.
대중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홍보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문화재'에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비용 문제로 정부나 공공기관 등이 쉬이 엄두를 내지 못할 일들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일부 문화재 관계자들은 "문화재를 아껴주는 기업들이 고맙지만, 외형적인 홍보에만 치우치는 것은 아쉽다"고 지적한다. 문화재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이미 만들어진 '물질'에만 신경쓴다는 말이다.
한국전통문화대에서 문화재관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 학생은 "'비전 있다'는 말을 믿고 이 분야를 택했는데, 너도나도 문화재의 겉모습에만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그 비전은 나의 것이 아니라 문화재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문화융성'은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서 보여지는 것인가 아니면 문화재 꿈나무의 손끝에서 자라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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