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엄주연 기자 = 우리는 전통시장하면 각 시장에서 유명한 먹을거리를 먼저 떠올린다. 광장시장의 마약김밥, 통인시장의 기름 떡볶이, 남대문시장의 야채호떡 등 전통시장의 백미는 '맛집탐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중곡제일 전통시장은 보통 시장과는 다르다. 먹을거리보다 ‘시장’이라는 공동체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
“우선 분위기가 좋다. 물건도 싸고 무엇보다 친절해서 20년간 이 시장만 다녔다" (함순덕씨·61·서울 광진구)
지난달 21일 방문한 이 시장은 불경기에도 활기찼다. 시골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아동복과 작업복, 고소한 향기를 풍기는 방앗간, 눈앞에서 바짝 구워지는 김 등이 전통시장 분위기를 자아냈다. 관광객들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동네 주민들은 거의 매일 한 번쯤은 들르는 장소였다. 기름을 짜러 온 함씨도 단골 고객 중 한 명이었다.
중곡제일 전통시장은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221번지 일대 4개의 노점을 포함해 143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1970년대부터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한 상거래와 경제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대형마트가 인근에 위치하고 소비자들의 소비행태도 변화하면서 시장의 어려움도 커졌다.
◆ 트렌드를 선도하는 시장
중곡시장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들과 다른 도전정신에 있었다. 그중 지난 2005년 전국 최초로 실시한 공용쿠폰 활성화 사업이 가장 획기적인 시도로 꼽힌다. 5000원에서 만원 사이의 상품을 구매하면 고객에게 100원짜리 쿠폰이 주어져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실제로 상인들의 손에는 돈과 함께 쿠폰이 들려 있었고, 고객들은 덤처럼 쿠폰을 받고 있었다.
쿠폰은 매주 금요일 현금으로 바꿀 수 있고 50매를 교환할 시 여기에 50%인 쿠폰 25매를 추가 지급해 준다. 고객들이 쿠폰으로 다른 상점에서도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쿠폰은 10분당 1매로 주차비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외에도 2013년 9월 전통시장 최초로 온라인 주문을 받고 상품을 집까지 배달해 주는 '장보기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중소기업청 주관 ‘2016년 전통시장 경영혁신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됐다. 전통시장 특성화 사업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확산 등으로 전통시장이 어려움을 겪자 시장의 자생력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청이 몇몇 시장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전통시장
체계적인 시스템은 고객은 물론 상인들의 만족도를 동시에 높였다. 상인들 중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오정용(44)씨도 이곳을 ‘도심 속의 진짜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부산에서 올라와 어묵 장사를 한 지 6개월이 됐다는 그는 “이곳은 전라도 분들이 60~70% 경상도 분들이 20~30%인데, 모두들 잘 어울린다”며 “이런 곳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28년 동안 반찬가게를 운영해온 박순희(56)씨도 “이곳은 다른 시장보다 활성화되어 있다”며 “행사 같은 것도 많이 하고 시장 살리려고 다들 애쓴다”고 했다. 특히 O2O 마케팅인 ‘딩동’을 시장에서 도입한 이후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졌다고 했다.
‘딩동’ 서비스는 상품을 딩동 어플로 구매하면 상인조합 차원에서 할인을 해주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쿠폰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매하면 원래 가격의 최대 반값 정도로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류정래 이사장은 “모든 상인들이 웃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싶다"며 "특정 상점을 밀어주기보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서 모두가 잘 사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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