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엄주연 인턴기자 = “참외가 참 맛있어요. 하나 맛보여 드릴까요?” (홍동석, ‘얼장’ 상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 광장이 정겨운 시골 장터로 변했다. 6월 마지막주 토요일 찾은 이곳은 흰색 파라솔들이 줄지어 서서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싱싱한 농산물을 뽐내고 있었다. ‘얼굴있는 농부시장’에서 과일을 담당하고 있는 상인 홍동석(28)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기롭게 과일을 권했다. 도시적이고 딱딱했던 DDP 건물이 젊은 농부들의 건강한 기운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앞만 보고 바삐 걷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고 농부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맛보며 즐거워했다.
얼굴있는 농부시장(얼장)은 전국의 소규모 농가들과 청년들이 함께하는 직거래 장터이다. (사)도농문화콘텐츠연구회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열었던 '느린 농부' 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하는 도농교류 프로젝트다. 얼장에서는 농식품 분야에 관심 있는 젊은 농부들이 바른 먹거리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농가들이 판로를 확대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올해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둘째주 토요일에 열렸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이번 6월달부터는 넷째주 토요일에도 장터가 한 번 더 열린다.
모이다 얼장은 좀 더 자유로운 젊은 마켓으로 청년과 농가가 상호 협력해 발전해 나가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도농문화콘텐츠연구회 홍서웅팀장은 “청년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고, 농가들은 판로를 뚫는 데 한계가 있다”며 “청년들은 농가의 철학을 배우고, 농가는 청년들의 기획력을 얻어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농가는 자생력을 키우는 동시에 청년들의 인큐베이팅까지 책임질 수 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실제 청년 농부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좋은 먹거리를 소개해주는 4명의 ‘불꽃 농부’는 작년 느린 농부 시장부터 모이다 얼장과 함께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모님 농장에서 받은 감자를 팔았지만, 이번에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감자를 팔고 있었다. 불꽃 농부 노보원(24)씨는 “작년에 선배님들을 만나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며 “저희는 농산물을 잘 판매해 드리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이다 얼장에서 단연 관심이 가는 곳은 청년 농부들이었다. 어떻게 농사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어보자 앳된 얼굴이 금세 진지하게 변했다. 다양한 종류의 토마토를 팔고 있는 이소연씨(26)는 “취업보다는 농업에 더 비전이 있어 보여서 이 길을 택했다”며 “농업이 장기적으로 할 수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허브 농사를 짓고 있는 박선영(34)‧박가영(25) 자매는 “운동선수를 그만두고 바텐더를 하던 중 허브 유통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며 “유동 인구가 상당히 많이 인기가 좋다”고 전했다. 이들 상점은 오후 3시밖에 안됐는데도 벌써 상품이 동나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도심 속 시골 장터에 만족했다. 대림동에서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노정임(48)씨는 “이곳에서 파는 건 일반 공산품하고 맛이 좀 다르다”며 “요즘 먹거리는 의심 가는 것들이 많은데, 이게 판로가 돼서 좋은 먹거리를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박현희(31)씨도 “마트에서 산 건 실패할 확률이 많은데 직접 보고 사니까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도농문화콘텐츠연구회 홍천기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A 편의점 가서 아르바이트하고 B 편의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은 먹거리를 보고 먹어볼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청년과 농가가 함께 만드는 문화가 있는 장터를 꿈꾼다. 그의 바람은 올해 12월까지 아무 탈 없이 계속 장터를 이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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