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서류전형에서 통과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인터뷰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방향을 바꿔 한국에서 취업을 하기로 했다. 중학생 때 이민을 와서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유창한 이른바 ‘이중언어자(Bilingual)'라는 점이 한국 회사 취업에 상당한 장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김씨가 지원했던 한국 기업들은 그를 뽑지 않았다. 요즘 한국의 대졸자들 중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영어를 잘한다는 점이 대기업 취업 전형에서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잘하는 이중언어 능력은 미주 한인들, 특히 1.5세들에게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중언어 능력이 생각보다 취업이나 경력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이중언어자들은 한 언어만 고급수준이거나 두 언어 모두 교육 수준이 높은 모국어자(Native Speaker)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취업 전문가들은 ‘이중언어의 환상’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한다. 한국어와 영어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을 이중언어 능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메릴랜드주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장모씨(51)는 자칭 ‘이중언어자’이다. 중학생 때 미국에 와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 영어를 상당히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장씨가 구사하는 영어를 잘 들어보면 미국 중학생 수준이다. 또한 한국어에 전혀 불편이 없어 보이는 그의 한국어 능력 역시 잘해야 한국 중학생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구인광고에서 ‘이중언어자 우대’를 내세우고, 한인 등 외국계 구직자들이 여기에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기업 등에서 요구하는 이중언어 능력은 자칫 구직자들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많은 한인 이중언어자들이 미국 기업들에서는 영어가, 한국 기업들에서는 한국어가 자신들이 요구하는 수준 이하라는 지적을 받는다.
어렵사리 미국 기업에 취업한 사람 중 미국인 직원들 사이에서 소위 ‘말빨’에서 밀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반대로, 한국 기업에 취업한 사람 중 많은 수가 “영어를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면서 한국어를 이해하거나 제대로 된 문서작성도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따라서 이중언어 능력을 내세워 취업을 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부수적인 조건으로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현재 미국에는 한국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 미국에서 그 언어 능력 자체로 전문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하는 이중언어 능력 이전에 취업과 경력에 절실한 것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자기만의 전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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