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이중언어자'(Bilingual)의 환상을 버려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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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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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언어 모두 고급 수준 드물어, 오히려 단점 될 수도

아주경제 워싱턴특파원 박요셉 기자= 2년 전 미국의 한 유명 대학에서 경영 관련 분야를 전공하고 졸업한 김모씨(25)는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려고 했지만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매번 서류전형에서 통과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인터뷰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방향을 바꿔 한국에서 취업을 하기로 했다. 중학생 때 이민을 와서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유창한 이른바 ‘이중언어자(Bilingual)'라는 점이 한국 회사 취업에 상당한 장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김씨가 지원했던 한국 기업들은 그를 뽑지 않았다. 요즘 한국의 대졸자들 중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영어를 잘한다는 점이 대기업 취업 전형에서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잘하는 이중언어 능력은 미주 한인들, 특히 1.5세들에게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중언어 능력이 생각보다 취업이나 경력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업들은 한국어를 잘하는 한인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도 영어 잘하는 대졸자들이 넘쳐난다. 오히려 이중언어 능력을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구직자들 중 두 가지 언어 모두 확실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이중언어자들은 한 언어만 고급수준이거나 두 언어 모두 교육 수준이 높은 모국어자(Native Speaker)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취업 전문가들은 ‘이중언어의 환상’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한다. 한국어와 영어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을 이중언어 능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메릴랜드주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장모씨(51)는 자칭 ‘이중언어자’이다. 중학생 때 미국에 와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 영어를 상당히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장씨가 구사하는 영어를 잘 들어보면 미국 중학생 수준이다. 또한 한국어에 전혀 불편이 없어 보이는 그의 한국어 능력 역시 잘해야 한국 중학생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구인광고에서 ‘이중언어자 우대’를 내세우고, 한인 등 외국계 구직자들이 여기에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기업 등에서 요구하는 이중언어 능력은 자칫 구직자들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많은 한인 이중언어자들이 미국 기업들에서는 영어가, 한국 기업들에서는 한국어가 자신들이 요구하는 수준 이하라는 지적을 받는다.

어렵사리 미국 기업에 취업한 사람 중 미국인 직원들 사이에서 소위 ‘말빨’에서 밀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반대로, 한국 기업에 취업한 사람 중 많은 수가 “영어를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면서 한국어를 이해하거나 제대로 된 문서작성도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따라서 이중언어 능력을 내세워 취업을 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부수적인 조건으로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현재 미국에는 한국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 미국에서 그 언어 능력 자체로 전문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하는 이중언어 능력 이전에 취업과 경력에 절실한 것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자기만의 전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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