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은 ‘최종병기 활’과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제작하고, ‘첼로: 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이우철 감독이 11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탄광 붕괴 사고 당시, 제 손녀를 친딸처럼 키워준 남자의 허벅지 살을 뜯어 먹으며 유일한 생존자가 된 이후 죄책감에 매일 같이 산을 오르는 남자의 이름은 기성. 배우 안성기의 이름을 뒤집은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영화 기획 단계부터 이 남자를 연기할 배우로 안성기를 내정하고 이름을 기성이라 붙였다.
안성기는 언뜻 봐도 고돼 보이는 이 작업이 “황홀했다”고 했다. “재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한민 감독이 ‘다른 사람 생각지 않고 선배만 생각하면서 영화 하나 기획 중입니다’라고 하기에 기대했는데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액션영화더라고요. 황홀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액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요. 고맙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뛰고 굴렀어요. 스턴트맨이 촬영장에 상주했는데 그 친구가 할 일이 없을 정도였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 배우 리암 니슨, 브루스 윌리스는 모두 60대다. 안성기는 “유독 우리 영화 시장에서 중장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 영화가 드물다. 연기 인생 59년 만에 젊어서도 안 해본 액션 연기를 제대로 해내면서 개인적으로는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고, 한국 영화계 전체로 보면 액션배우 정년이 늘어나는 데 일조했다”며 크게 웃었다.
내년이면 데뷔 60년을 맞는 안성기에게 ‘사냥’은 “도전”이었다. 한 분야에서 반평생을 넘게 있었으면서, 권태를 허락하지 않고 늘 도전에 목말라 하는 그는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기술이 쌓여 도사가 되는데 연기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연기는 바뀌는 시대 속에서 매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해서 늘 새롭고, 설렌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미숙하다”고 했다.
“만으로 다섯 살 때부터 연기를 했지만, 이걸 계속할 생각은 없었어요. 한국외대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후 베트남어 교육대 교무관을 하려고 ROTC에 지원했죠. 하지만 전방에서 소위 달고 있을 때 베트남이 공산화가 된 거예요. 한순간에 백수가 됐고, 뭐 어쩔 수 없이 영화판으로 돌아왔죠. 죽을 때까지 연기해야겠구나, 마음먹었는데 배우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1980년대만 해도 연극영화과는 공부 안 하는 애들이 모인 과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아! 내가 평생 할 업이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작품을 택할 때도 신중했죠. 이 시대에 짚고 넘어가야 할, 공론화될 필요가 있는 작품을 일부러 선택했습니다.”
59년의 연기 인생을 돌아봤을 때, 160편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우문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또래의 동료가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죠. 예전에는 김명곤, 문성근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제 본업을 떠났으니 외톨이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배부른 소리죠. 지금 어린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살아남기가 얼마나 치열해지겠어요. 저는 부전승으로 편하게 올라왔는데 말이에요. 편해서 좋기는 한 데 문득문득 외롭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에 유별스러운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요. 저는 계속 연기를 할 거니까요. 초심은 저에 대한 약속이죠.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더라도 사람은 그러면 안 되니까요. 인기에, 부에 휘둘리지 말자고 지금도 다짐합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