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 지도부의 업무 및 주거 공간 중난하이(中南海)의 정문인 신화문에 박제되다시피 한 구호가 자리잡고 있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중국인들은 황제 통치 시절이 아닌 요즘에도 '톈가오황디위안(天高皇帝遠)'을 입에 올린다.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는 뜻으로 중앙 권력이 지방에는 제대로 미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런 중국에서 최근 TV 리얼리티 쇼가 인기몰이 중이다. 산시(山西)위성TV의 '산시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개합니다(人設山西好風光)'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27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방송된다. 산시성 내 11개 도시의 당 서기나 시장·부시장이 직접 출연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동영상 자료가 나간 뒤 무대 위에서 5분 스피치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도시의 역사적인 유물을 포함한 관광 자원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세일한다. 스튜디오 안 관객 및 평가단은 물론 일반 시청자들도 이들에 대한 평가에 참여한다. 이러한 포맷은 중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이다.
이들 대다수에게 TV 생방송 출연은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누구도 선뜻 응하지 않았다. 이에 산시성 지도부가 압박을 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프로그램 이름은 리펑(李鵬) 전 총리의 아들 리샤오펑(李小鵬) 산시성 성장이 정할 정도였다. 리얼리티 쇼를 통해 산시성의 쇠퇴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는 정계 입문 뒤 고속 승진 가도를 달리다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이번에 상당한 '득점'을 한 셈이다.
중국 사람들은 산시성 하면 석탄, 부패, 식초 세 가지를 먼저 떠올린다. 석탄 주요 생산지인데다 산시방(산시성 출신 정치세력)은 비서방(고위간부 비서 출신 세력), 석유방(석유기업 고위간부 출신 세력)과 함께 중국 부패의 3대 파벌로 꼽힐 정도다. 식초는 산시성 특산물로 명성이 높다. 이번 흥행은 관광객 유치 효과 외에 산시성의 어두운 이미지도 크게 바꿔 놓았다.
백성들이 지방 당 간부들을 심판하면서 환호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감시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거의 모든 관리들이 부패했다고 믿고 있다. 행정부 격인 국무원은 규제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으나 관료들은 아직도 경제 활동과 인민들의 생활 전반에 걸처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이래 계속되고 있는 반부패 드라이브는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됐다.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러나 부패 척결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은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관료사회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뒤탈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상적인 업무마저 떠맡기를 꺼리는 관리들에다 반부패운동에 반발해 고의로 일을 소홀히 하는 부류도 있다.
우리나라 유수의 레미콘 업체가 지금 중국에서 겪고 있는 일은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회사는 중국 내 공장에 대한 파산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려 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초급법원과 중급법원은 서로 상대방에게 서류 접수를 미루는 바람에 반년 이상 허송세월했다. 우여곡절 끝에 초급법원에 서류를 접수하긴 했지만 법원 측은 "앞으로 파산 처리에 얼마나 더 걸릴지는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중국의 사법부는 독립이 안돼 있어 법관도 일반 공무원에 가깝다. 파산 지연에 따른 비용은 계속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부패 혐의로 조사받던 관리들의 자살도 속출하고 있다. 자신의 사망으로 사건이 종결되면 불명예를 피하고 가족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 취임 뒤 3년 반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관리들은 무려 120명에 달한다. 후진타오(胡錦濤)전 주석 집권 10년 동안 자살한 관리 68명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시 주석이 부패 척결 템포를 조절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중국 관리들은 과연 바뀌게 될까. 공산당 지도부는 1990년대에 관리들의 부패를 막기위해 급여를 대폭 올려주는 싱가포르 모델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재원이 부족한 데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부패는 없애되 관리들은 뛰게 만드는 것, 개혁을 추진하는 시 주석 앞에 가로 놓인 난제중 난제다.
(아주경제 중문판 총편집)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