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암울한 식민지배 아래서 살아가는 삶의 고뇌를 ‘잎새에 이는 바람’으로 노래한 윤동주 님의 ‘서시’이다. 이 시에 있는 ‘잎새’는 표준말이 아니었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면서, 여기저기서 꽃이 피고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질이는 꽃내음이 진동한다. 여기에 쓴 ‘내음’도 표준말이 아니었다.
농촌진흥청 이전과 함께 전주혁신도시로 이사 와서 집을 짓고 사는 필자는 저녁 먹고 여섯 살 배기 막내와 마실을 가는데, 여기에 쓴 ‘마실’도 표준말이 아니었다.
사전에서 ‘상생’을 찾아보면, “음양오행설에서, 금(金)은 수(水)와, 수(水)는 목(木)과, 목(木)은 화(火)와, 토(土)는 금(金)과 조화를 이룸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실제 생활에서는 그런 뜻보다는 둘 이상이 서로 맞춰 잘 살아간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사전 풀이가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전은 우리가 쓰는 말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표기법, 발음, 어원, 의미, 용법 따위를 설명한 책이다. 따라서 사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표기법, 의미, 용법 등을 수시로 바꿔줘야 한다. 그래야 삶을 제대로 반영한 사전이 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드는 국립국어원에서는 냄새/내음, 잎사귀/잎새의 말맛과 쓰임이 다름을 인정하여 2011년 8월에 내음과 잎새를 표준말로 올렸다. ‘마실’도 작년 말에 표준말로 승격시켰다. ‘상생’의 풀이에도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이라는 뜻풀이를 추가하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루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의 덕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는 보기를 지난해 말에 사전에 실었다. 이렇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삶에서 쓰는 낱말의 표기법, 의미, 용법을 수시로 바꾸면서 삶을 반영한 사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촌스럽다’는 풀이는 아직 바꾸지 않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촌스럽다’의 풀이는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는 뜻뿐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농촌으로 옮기는 귀농·귀촌 인구가 48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귀농 인구는 2014년보다 10.5% 증가했고, 귀촌 인구는 2014년보다 6.2% 증가했다고 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33년에는 귀촌인구가 95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귀촌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하고자 촌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여유를 찾고자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촌스럽다의 풀이가 하나뿐이라면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느는 것을 해석할 방법이 없다.
‘촌스럽다’는 낱말의 풀이에 “자연과 함께하고자 농촌으로 가는 사람들”이나, “촌을 사랑하여 자연과 함께 삶을 가꾸려는 마음가짐” 같은 풀이를 더 넣어주한다. 그래야 그런 사전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국어생활이 가능하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촌스럽다는 풀이가 일반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사전 뜻풀이에 넣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너무 수동적이다. 정부 3.0. 개방·소통·협업을 통해 국민에게 먼저 다가가는 행정이다. 창조적인 소통을 위해서 현실을 반영하여 먼저 사전 풀이를 다양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행정이야말로 주도적이고 선제적인 행정이다.
사전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사회상을 반영한 새로운 풀이를 추가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오해 없는 소통을 위한 말글살이의 기준이 된다. 그것이 바로 온 국민의 말글살이 기준이 되는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촌스럽다’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재해석되기를 기대한다. ‘촌스럽다’의 뜻풀이가 생명의 근원과 참된 위안의 의미로, 농업과 농촌은 정겨움과 희망, 순수의 뜻으로 재해석돼 국민적 공감이 이뤄지고, 국어사전에 뜻풀이가 추가되기를 기대한다. 촌스러움은 낡고 소외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해주고 보듬어주는 고마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외친다. 촌스러워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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