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이 선생은 1918년 루씨여학교 두산리분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손정도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19년 5월 혈성부인회에 가담해 상해 임시정부로 보낼 군자금을 모집했으며, 1919년 9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처단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온 강우규를 은닉해주고 군자금을 모집해 의거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했다.
1919년 9월 초에는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해 부인단 총대에 선출됐다. 그는 대동단 여성대표로서 만세운동을 추진했고 3·1운동 때와 같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독립운동가에 포함됐다.
하지만 일제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으며 1920년 3월 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등과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
정부는 대동단의 여성대표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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