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정 사장을 이야기할 때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외손자이자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의 동생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단순히 ‘삼성가’라는 단어로 경영자로서의 그를 설명하기는 많이 부족하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정 사장을 “신세계에 고급스러운 감성을 입힌 주인공”이라고 평가한다. 이화여대에서 디자인(응용미술학과)을 전공하고 미국 최고의 명문 미술 대학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에서 유학한 정 사장은, 감성·섬세함에 글로벌 트렌드를 읽는 능력까지 겸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신세계조선호텔 마케팅 담당 상무보로 경영 일선에 뛰어든 정 사장은 2000년 상무로 승진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프로젝트실장을 맡았으며, 2009년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부사장으로 6년을 보낸 그는 2015년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마침 2016년은 그가 경영수업을 받은 지 20년이 되는 해다.
지난 4월에는 오빠 정 부회장과 각자 보유한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을 교환해 정 부회장은 이마트를, 정 사장은 백화점 사업을 각각 책임지고 있다.
정 사장은 섬세한 반면 필요할 땐 과감하고 저돌적으로 승부를 거는 경영인이다.
일례로 그가 조선호텔 근무 당시 메모지나 룸 키 등 고객들이 자주 쓰는 호텔의 세세한 소품부터 객실 레노베이션 디자인까지 직접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지난 2014년 여름 신세계백화점 본관 푸드마켓 리뉴얼 작업 당시에는 주변 만류에도 불구, 기존 스타벅스 매장을 철수시키고 떡방을 입점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결과는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으며 매출도 올라갔다.
신세계백화점의 매장 디자인 구성은 물론이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패션, 화장품사업 등도 주도했다. 세계적인 거장 제프 쿤스의 ‘세이크리드 하트’를 들여오는 등 아트마케팅을 시도한 장본인이 정 사장이다. 뉴욕·밀라노·파리 등의 해외 셀러브리티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분더샵’에 유치해 신세계의 럭셔리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등 해외 유명 의류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다.
이와 함께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를 이마트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로 가져와 리뉴얼을 시도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정 사장은 신세계그룹의 화장품사업을 확대하는 데도 힘썼다. 2012년 색조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 인수를 주도하며 화장품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OEM) 업체인 인터코스와 합작법인을 설립, 화장품 제조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는 그의 말처럼, 정 사장은 눈 앞에 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것’을 보는 눈을 가졌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정 사장이었기에 그런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디자인 경영’, ‘백화점 혁신’ 등을 이뤄낸 그는 창의적인 인재들과 함께 신세계를 백화점의 상식을 뛰어넘는, 그동안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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