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준형 기자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을 맹비난하는 고성이 어렴풋이 귓가에 들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욕설 섞인 비방도 희미하게 들린다. 경기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마을에 온종일 울려 퍼지는 북한의 대남방송이다.
대한민국 최북단 마을이자 비무장지대(DMZ) 유일의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마을. 북한이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한 지난 19일 찾아간 대성동마을은 우리 군이 관리하는 민통선 경계검문소, 유엔군사령관이 관리하는 DMZ 경계검문소 그리고 판문점 경계검문소까지 총 3번의 관문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삼엄한 경비 속에 들어선 대성동마을은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총 49세대, 20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대성동마을에는 학교도 있고 교회도 있다. 마을회관에서는 영화도 볼 수 있다. 산 좋고 물 좋은 영락없는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마을 입구에 걸려있는 ‘자유의 마을’이라는 문구처럼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 유엔군사령관 관할에 있기 때문이다. 미군들은 정기적으로 마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제약도 따른다. 마을 여성은 외부 남성을 불러들일 수 없다. 마을 남성과 결혼하는 외부 여성의 경우에도 농사를 짓는다는 전제 하에 마을에 발을 들일 수 있다. 대부분 1980년대 지어진 건물이라 주거환경도 열악하다.
고즈넉한 마을 풍경에 넋을 놓고 있을 때쯤 곳곳에 눈에 띄는 공동경비구역(JSA) 소속 장병들과 눈앞에 보이는 북한의 모습이 다시금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논밭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이고 그 뒤로 보이는 곳은 모두 북한 땅이다. 북한이 체제 선전을 위해 조성한 기정동마을과의 거리는 약 1.9㎞에 불과하다.
기정동마을 옆으로 수많은 공장과 건물도 눈에 띈다. 개성공단이다. 밤낮없이 환한 불빛으로 화려했던 개성공단은 지금은 어둡고 조용하기만 하다. 가동이 전면 중단된 이후에는 사실상 인적이 끊긴 상태다.
대성동마을의 한 주민은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는 밤에도 공단과 주변 마을의 불빛이 화려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북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자 고요함을 깨는 대남방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남북관계를 증명하듯 대성동마을에서는 하루 종일 대남방송이 들린다. 주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최근에는 사드 경북 성주 배치 결정을 비난하는 내용도 늘었다.
대낮에 희미하게 들리는 대남방송은 한밤중이나 새벽이 되면 더욱 커진다. 마을 주민들이 밤잠을 설칠 정도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대남방송은 개성공단 폐쇄 이후 본격화되면서 마을 주민들은 더위에 소음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 주민은 “요즘 사드 관련 대남방송이 늘었다. 대통령에 대한 쌍욕도 심해서 차마 듣기 힘들 정도”라며 “밤에는 잠을 자기 어려울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고 말했다.
대성동마을 옆에 위치한 판문점으로 걸음을 옮겨도 대남방송은 여전하다. 얼굴을 마주보고 판문점을 지키고 있는 남과 북의 장병들 사이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흐른다. 판문점 남측 연락사무소에 설치된 5대의 남북직통전화는 5개월째 먹통이다. 지난 2월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하자 다음날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남북간 통신수단을 모두 차단했기 때문이다. 연락사무소 관계자가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4시 통화를 시도해보지만 북측은 감감무소식이다.
어디선가 정적을 깨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판문점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주먹을 허리춤에 불끈 쥔 채 굳은 표정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우리 군 장병과 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외국인들의 대조적인 모습이 고요함 속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판문점과 묘하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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