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채열 기자 =임진왜란 당시 부산지역 3대 전투 현장의 한 곳인 다대포진성지에서 성벽 바깥에 설치한 방어용 도랑의 석축이 최초로 확인됐다.
특히, 이번 다대포진성 해자조사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유물이 다량 출토될 가능성이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은 지난 6월 27일 다대포진성 주변 주택신축과 관련해 공사전 문화재 유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입회조사에서 다대포 진성 해자(垓子, 성벽 바깥에 설치한 방어용 도랑)의 석축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입회조사 결과, 다대포진성의 동북쪽 잔존성벽으로부터 약 10m 외곽 지표 아래 1m 지점에서 해자로 추정되는 외벽과 내벽석이 확인됐다.
확인된 해자는 자연 생토면을 너비 4.8m 정도로 굴착한 후 너비 3.3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양쪽 가장자리를 석축으로 쌓은 형태이다. 해자의 외벽 아래에는 바닥에 깔았던 것으로 보이는 깬 돌 1단 정도가 남아 있었으며, 내벽의 석축은 모두 훼손되고 바닥 채움 돌만 확인됐다.
이 해자는 1894년 폐성(廢城) 이후 민가가 들어서면서 해자 하부까지 이미 훼손된 상태이며, 기와편과 자기편 이외의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 석축의 잔존상태로 보아 해자는 동서방향으로 이어져 최근 신축된 건물과 다대로의 건너편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다대포진성(多大浦鎭城)은 경상좌도 수군첨절제사영(水軍僉節制使營)으로, 둘레 1806척(약 54km), 높이 13척(약 4m) 규모의 석성으로 동서남북의 4대문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 장림포(長林浦)에 있다가, 1490년(성종 21) 11월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축조됐다.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 부산진성 전투와 더불어 부산지역 3대 전투의 현장으로 첨사 윤흥신 장군과 그 아우 윤흥제가 결사 항전하여 최초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좌수영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는 국방의 요지로서 처음 종4품의 무관인 만호가 배치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승격되어 종3품의 수군첨절제사가 임명됐다.
현재, 다대포진성은 둘레 541.8m, 높이 3.0m 정도로 성벽이 양호하게 남아 있으나 대부분 민가가 밀집하고 있어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다. 다만 조사지역 북쪽 50m 지점에 윤공단(부산광역시 기념물 제9호)이 있으며, 성내 있었던 다대포객사(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가 1970년 몰운대로 옮겨 보존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부산의 격전지인 부산진성은 함락 직후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동래읍성은 민가 하부에 성벽의 기초만 남은 상태로 지하철 3호선 수안동역사 공사 시 당시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인골과 갑옷, 무기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시립박물관 관계자는 “향후 다대포진성 주변의 해자조사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유물이 다량 출토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해자의 확인은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면서, “현재, 해자가 확인된 지역은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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