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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방귀좀 뀌는 척 하는 이들이 허세를 부릴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상대는 그를 알리가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십중팔구 스스로가 한다. “**지검 ***검사가 내 조카야”라거나 “*** 국회의원이 대학동창이야”라는 식이다.
실제 유력자와의 인맥은 그 자체로 적잖은 영향력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많은 인맥을 쌓고 그 인맥을 관리한다. 우리 사회에서 지인의 이른바 ‘민원’을 냉정하게 거절하는 건 그와의 관계에 벽을 쌓는 것과 같이 인식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같은 인맥과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적잖이 청탁과 비리의 온상이 된다는 점이다
성공한 1세대 게임벤처의 상징인 김정주 넥슨 회장은 대학동기동창인 진경준 검사장에게 자사주 4억여원어치를 사실상 공짜로 줘 구렁텅이에 빠졌다. 친구에게 이른바 ‘보험들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탁월한 경영감각의 소유자란 수식어는 부정부패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서영교 국회의원은 가족채용 논란으로 탈당까지 해야 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딸과 친족을 보좌관으로 채용했다 후폭풍을 맞은 것이다. 짐작컨대 서 의원이 배지를 단 뒤 많은 친족들이 한 자리 얻으려고 몰려들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대우건설 사장 인선과정이 모 국회의원 외압설로 불발되는 사태가 있었다.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2명의 최종후보에 오르는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가 노골적으로 산업은행에 압력을 가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이에 따라 지난 20일로 예정됐던 최종 후보 선정 작업이 불발되면서 대우건설은 경영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후보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후보들이 “내 뒤엔 ***가 있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인맥 자랑을 하고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상황을 접하면서 우리사회에 과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막대한 영지와 특권을 누리는 귀족들이 평민에게 반대급부로 주는 책임과 의무였다. 이로 인해 평민들의 폭동없이 특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철저한 거래 시스템이지 숭고한 정신에서 나온 희생은 아니란 생각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는 풍랑속에서 기득권과 일반인간에 이같은 거래시스템조차 뿌리 내릴 토대를 잃었다. 친일파가 득세하고 많은 경우 정권유착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온 역사 속에서 피지배층의 충성을 보상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런 근대사의 과정에서 우리는 먹고살만한 부를 쌓았지만 자존감을 잃었다. 권력과 부는 누구나 누리고 싶어하지만 자랑스러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최근엔 특히 권력형 비리와 정격유착과 관련된 사건들을 많이 접하는 것 같다. 우리가 최소한의 자존감을 갖고 살기위해서는 이같이 논란이 되는 사건들을 철저하게 정리해해야 한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자신감이 되고 자존감으로 발전한다.
오랫동안 굳은살이 박힌 곳에 한순간에 새살이 돋게 할 수는 없다. 구체적이고 차근차근 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부터 철저히 바꾸자. 진경준 검사장의 비리는 철저히 사법적인 단죄를 하고, 서영교 의원의 가족채용 문제는 재발되지 않도록 국회 시스템을 바꾸자. 국책은행을 연결고리로 한 정치권의 인사 개입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사법적 처분이 아니더라도 대중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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