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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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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2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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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승 양방웅의 노자와 장자이야기
나비에서 꿩으로

줏대 없이 끌려 다니는 그림자

그림자의 그림자로서 엷게 비치는 그림자 망량(罔兩)이, 본 그림자인 영(影)에게 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망량: 조금 전에는 당신이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또 앉아 있다가 일어서니 어째서 그리 줏대 없이 끌려만 다니는가?

영: 왜냐면 나는 반드시 다른 것에 의지해야만 되니까 그런 거야.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뱀이거나 매미가 아닐까? 내가 왜 그렇게 줏대 없이 끌려 다니는지를 어찌 알겠는가?

엷은 그림자 망량은 본 그림자인 영에게 의지하고, 영은 그를 끌고 다니는 주인에게 의지하고, 또 그 주인은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있지요. 만물은 모두 무언가에 의지해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망량은 자신이 영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모릅니다. 오히려 영에게 왜 자주성 없이 끌려만 다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하지만 영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깨어 있었다는 점이지요.

이들 두 그림자는 몸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영은 마음이 밝은 때에 나타나는 의식의 그림자입니다. 망량은 영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그림자입니다. 영을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선(善)의 그림자로 보면, 망량은 짐승처럼 사나운 불선(不善)의 그림자입니다. 특히 어릴 때 정서적, 신체적 또는 성적으로 학대를 받은 사람에게는 어두운 망량의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괴롭고 우울해지거나 혼미해지는 특별한 환경에 처해지면 숨어있던 망량이 나타납니다.

이들 두 그림자는 마음속에도 있지만, 역사 속에도 드리우고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1637년1월30일 조선의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한 치욕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역사의 한 자락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자들의 울안에서 지내오다 보니, 닭장 속에 사는 닭처럼 자율성을 잃게도 됐습니다. 지금은 중국과 비슷하게 집단주의와 서열주의가 강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알 듯, 모를 듯 미국의 그림자에 가려 있는 채 살아가고 있는 듯 한 모양새이기도 합니다.

망량처럼 끌려만 다니고 있는데도, 지식인들이 이를 슬그머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기우이겠지요.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을 차단하기 위해 사드를 성주 땅에 배치해 놓기로 했습니다. 그럴 경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 입니다. 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될지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반도에 어두운 기운이 드리우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마음이 밝은 때에 나타나는 의식의 그림자가 우리 곁에 함께 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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