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김혜란 기자 =고독한 길이다. 현실 정치인의 길은 때때로 외롭다. 민심이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해도 국민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삐딱한 시선이 휘감아도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민들레꽃의 홀씨’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돼야 한다. 정치인의 숙명이다.
세간의 예상을 깼다. 기자와 특파원, 앵커 등을 거치면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명박 정부가 2년차 때 날치기를 시도한 미디어 3법에 반대하다가 MBC 보도국장에서 해임됐다. 201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정치권의 발을 들여놓았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벌써 재선이다. 동일한 전직을 거친 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슈에 총대를 메고 대여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치보다는 ‘경제’가, ‘민생’이, ‘정책’이 우선이다.
“현실 정치권에 와서 보니까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기자들과 오찬에서 이 말을 한 지 2년 만에 당 산하 국민연금 공공투자 추진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국민연금 공공투자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핵심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박광온(재선·경기 수원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얘기다.
박 위원장은 19대 후반기와 20대 전반기 모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총 53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중 저출산·고령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법안이 절반을 넘는다. 박 위원장의 20대 국회 1호 법안도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핵심으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국채법 개정안’이다.
그래서 찾아갔다. 세계 경제의 성장률 하향 조정이 현실화된 가운데, 한국 경제 역시 장기적인 저성장·저물가 국면으로 진입했다. G2인 중국의 성장 하락,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점점 커지는 신흥국의 하방 리스크 등 대내외 악재가 혼재한 상황에서 저출산·고령화의 출구전략을 찾고 싶었다. 박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 동안 진행했다.
◆“저출산·고령화, 韓 미래 좌우할 중요한 문제”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박 위원장은 “그간 정부가 저출산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획기적인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근본적인 해법과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저출산의 가장 큰 이유로 ‘사회 양극화’를 꼽았다. 박 위원장은 “결국 문제는 경제다. 개인의 소득은 줄어든 반면, 기업 소득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조세 역시 개인에게 많은 부담을 지우지만, 기업에는 부담을 덜 지게 하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대로 두면 사회 양극화 해소는커녕 저출산 구조는 더욱 고착화된다”며 “당장 가계 소득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정책이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가처분 소득’이라도 증대하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고민했다. 그것이 국민연금 공공투자”라고 설명했다.
이는 더민주의 20대 총선 ‘1호 공약’이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 상징인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입법안으로도 불린다.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기금의 ‘사회적 투자 성격’을 적극 활용, 공공임대주택 등 공적 인프라에 적극 투자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신탁투자’의 일종으로 보는 정부·여당은 ‘노후 안전판을 흔들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여기에는 ‘신탁 기금이냐, 사회적 공공투자냐’의 국민연금 성격이 논쟁 지점으로 형성돼 있다.
박 위원장은 국민연금의 공공 투자성과 관련해 “2030세대의 미혼 남녀와 젊은 부부들이 가장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은 ‘주거비’와 ‘양육비’”라며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통해 향후 10년 동안 장기 임대주택 85만호(현 5.2%→13%), 국공립 어린이집 5600개(현 10%→30% 수준) 확충에 나선다면, 자연히 가처분 소득이 늘고 저출산 해소는 물론,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공공투자 위험성? 오히려 이익”
더민주의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국민연금, 국채·지방채 매입→중앙정부·지방정부, 매입한 채권으로 공공투자사업 시행’ 등의 방식을 거친다. 비교적 안정된 채권에 투자하는 방식인 셈이다.
‘국민연금의 직접투자’를 골자로 하는 국민의당 국민연금 공공투자 방식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박 위원장은 “직접 투자 방식으로 할 경우 리스크가 바로 연기금으로 가지만, 국채투자 방식은 어떤 경우라도 연기금으로 직접 가는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거듭 “채권투자를 통한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공공임대주택과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은 물론, 좋은 일자리로 창출하게 된다”며 “연금 측면에서 보더라도 안정적인 투자처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기적 관점으로 유동성 문제가 있다. 현재 국민연금 투자는 채권과 주식에 90% 몰려 있다”며 “투자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효과가 기대되는 정책”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기금 투자현황을 보면, 채권투자(57%) > 주식투자(32%) > 부동산 등 대체투자(10%) 순이다.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통해 사회 공공성 확대 및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활성화, 연금 기금의 안정성을 동시에 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채권투자도 빚”이라며 기금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회계 장부상 보면 부채가 생기는데, 반대로 자산 형성 생긴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다. 나중에 부동산 가격 상승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남는 것”이라며 “(또한) 국가와 지자체가 원금과 이자를 국민연금에 상환, 국민연금 국채투자 총량에는 변화 없다”고 역설했다.
◆“정부·여당 반대 이유 ‘경직성 때문”
박 위원장은 국민연금 공공투자의 장점에도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기존에 습관적으로 해왔던 대책들로만 하려는 ‘경직성’ 때문”이라며 “정부 관계자나 여당 의원들도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대한민국의 향후 장래를 좌지우지할 문제로 인식하지만, 해법을 제시하는 것에 절박함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행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2항2조에 ‘공공사업을 위한 공공 부분에 대한 투자’를 명시하고 있다”며 “안 되는 것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미 법에 명시된 합법적이며 합리적인 투자 방식”이라고 피력했다.
연기금 투자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참여정부는 ‘한국형 뉴딜 정책’의 일관으로 연기금 투자를 추진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 진보세력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은 기금관리기본법 제3조3항(연기금의 주식·부동산 매입 금지 조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연기금의 주식·부동산 투자 허용 확대를 반대, 결국 무산된 바 있다.
박 위원장은 “그때와 확실히 다른 것은 당시 복지투자는 리조트 등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지만, 더민주의 국민연금 공공투자는 채권투자 형식의 연금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투자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합의 위해 과제 던졌다…다수 동의할 것”
또 하나의 난제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국민적 저항’이다.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반감도 큰 상황에서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사회적 합의 없이 ‘쌈짓돈’ 쓰듯 하는 데 대한 비판여론이 적지 않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5300억원에서 2003년 100조원, 2010년 300조원, 2015년 512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1조 달러에 달하는 일본 공적연금펀드와 9000억원 달러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박 위원장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과제를 던진 것”이라며 “다수의 국민들도 여기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고 확신했다.
그는 일부 보수 경제학자들이 반대 근거로 드는 ‘국민연금기금의 복지사업 최근 5년간의 수익률 -1.04%’ 논란과 관련해선 “복지사업과 공공투자는 다른 개념”이라며 “전자는 가입자에 대한 자금의 대여, 노인복지시설의 설치 및 공급 임대와 운영, 체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것”이라고 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청풍리조트 운영’이다. 그러면서 “공공투자는 리스크 큰 사업을 지양하고 공공임대와 국공립 어린이집 등 인적 자본과 관련한 곳에 투자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 수석대변인이기도 한 박 위원장은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와 관련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며 검찰 개혁과 청와대 인사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당론 불확정 논란에 대해선 “안보와 외교·경제 혼합된 이 문제에 대해선 매우 다각도의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광온 더민주 국민연금 공공투자 특위 위원장 프로필
◇1957년 전남 해남 ◇고려대학교 ◇MBC 사회부·외신부·정치부 기자, 도쿄 특파원 ◇MBC 보도국 국장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당선(경기 수원정) ◇제19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비서실장 ◇제20대 국회의원 재선(경기 수원정) ◇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 제20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 더불어민주당 국민연금 공공투자 특별위원회 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