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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묵·채규대 부자가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홍주성[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함께 독립운동가 채광묵(1850~1906)·채규대(1890~1906) 부자 의병장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채광묵은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해 홍주의병에 참여했고, 1896년 1월 16일 홍주관아에 창의소를 설치하고 김복한을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채광묵은 남면 소모관에 임명돼 의병 모집을 위해 파견되었으나 창의소를 차린 지 하루 만에 관찰사 이승우가 배반해 의병 지휘부 인사들이 차례로 구속되고 만다.
홍주의병이 그렇게 실패하자 채광묵은 상경해 송수만, 김운락 등과 도약소를 치리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적을 복수할 것을 청한다. 또한 국외로 도망한 적을 잡아오지 않는 외부대신 이완용과 법부대신 한규설을 탄핵했다.
1901년 8월에는 조정에서 내린 내부주사 직을 "국모의 복수를 할 기약도 없는데 영예를 받을 수 있느냐"며 강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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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의병이 창의소를 설치했던 홍주관아[사진=독립기념관 제공]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채광묵은 이듬해 의병을 일으키고 전 참판 민종식을 의병장에 추대했다. 의병들은 1906년 3월 광시장터에서 봉기, 홍주성을 공격했다. 하지만 관군의 저항으로 홍주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청양의 합천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일본군과 합세한 관군에 주요 인사들이 체포된다.
민종식은 같은 해 5월 9일 홍산군 지치동에서 의병을 다시 일으켰고, 5월 20일 마침내 홍주성을 점령하게 된다. 이에 이토 히로부미는 2개 중대 규모 이상의 일본군을 파견해 홍주성을 공격했다.
참모장으로서 항전하던 채광묵은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끝내 순국하고 말았으며, 부친을 모시고 항전하던 아들 채규대도 홍주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1977년 채광묵의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해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하였고, 1992년에는 채규대를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했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채광묵·채규대 부자의 공적을 기리고자 오는 8월 한 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전시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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