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마주한 각국의 외교 수장들은 외교전 1라운드를 무사히 마치고 제2라운드에 돌입하기 위해 각국의 처세술을 점검하는 모양새다.
이번 ARF 계기 열린 연쇄 회의는 어느 때보다 아세안, 동북아 관련국 간 갈라진 틈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최근 한국 측의 행위는 쌍방(양국)의 호상(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며 한국 측이 "어떤 실질적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들어보려고 한다"며 사실상의 압박을 하기도 했다.
중국도 한국에 대한 적당한 서운함을 느꼈고 한국 역시 북핵 해결을 둘러싼 한중 관계의 한계성을 실감하게 됐다는 평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기자와 만나 "(한·중이) 한동안은 이렇게 상처를 안고 가게 될 것"이라며 "오히려 이번 계기에 양국 관계의 한계를 느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처를 입고 생채기가 아물어도 상처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래도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공고해 질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북핵 공조에 근심이 더해졌다.
왕이 부장이 비록 북핵 불용과 유엔 안보리 결의 충실한 이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사드 갈등이 계속되는 한 중국의 대북공조 결속력 약화 우려는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사드와 관련한 문안 반영을 시도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ARF 의장성명은 이날 회의가 종료 될때까지 채택되지 못했다.
사드는 물론, 북핵,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표현 수위를 놓고도 관련국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중국은 사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이번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 무대에서 북한과 노골적으로 밀착하는 모습으로 연출했는데, 이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을 향한 견제의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은 이 틈을 한껏 이용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사처럼 북한과 중국은 이미 신뢰 관계가 깨진지 오래지만 세찬 풍랑을 맞은 지금 라오스에서 만나 함께 협력했다. 위기가 끝나자 원 상태로 돌아갔지만 정말로 원상태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철저한 대북 제재 결의 이행에 관한 약속을 준수하기로 했지만 북한과 민간차원의 경제교류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이 역시 앞으로 지켜볼 대목이다.
아울러 이이제이(以夷制夷) 전통적 대외정책을 펴는 중국은 이번에도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불만을 최대한 표출한 바, 향후 북한과의 어떤 또다른 공조가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는 평가다.
북중이 밀착을 과시하고 미중 간에도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찬바람이 쌩쌩한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북핵에 대한 공조를 재확인했다.
국제 중재재판 결과를 놓고 미국은 수용한 반면 중국이 강하게 거부하면서 미중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언제든 우리 정부가 미중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닥칠 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애 과거와는 다른 당당한 외교를 주문하고 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늘 사드 문제를 얘기할 때 우리한테 사드배치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라고 얘기한다"며 "우리도 똑같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군사행동이 평화와 안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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