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충남 홍주 매평리(현재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채광묵 선생은 1896년 김복한 등과 홍주에서 지역의 유생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반개화, 반침략 등 반일투쟁을 전개했다.
관찰사의 배반으로 의병 투쟁이 실패로 돌아가자 상경한 선생은 도약소를 차리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에 대해 복수할 것과 이를 도운 친일내각의 외부대신 이완용 등을 탄핵할 것을 상소했다.
1901년 8월 조정에서 내부주사 직을 내리자 ‘국모의 복수를 할 기약도 없는데 영예를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고, 1904년에는 일본인 나가모리가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반대 통문을 작성해 배포하고 일본 공사를 만나 이를 질타했다.
일본군의 패전 소식에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보병 제60연대의 참전을 명령했다. 선생은 일본군의 공격에 끝까지 항전하던 중 동료 의병들과 함께 순국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병으로 항전하던 아들 채규대 선생도 함께 전사했다.
정부는 채광묵·규대 부자에게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1992년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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