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포를 주로 취급하던 상점에서 시작한 두산은 긴 역사를 거치면서 발전소와 플랜트, 건설기계 등 대형 사업을 아우르는 연매출 19조원의 그룹사로 성장했다.
31일 두산그룹에 따르면, 내달 1일은 두산 창업주 매헌 박승직이 1896년 서울 종로 4가 배오개에 두산의 시원(始原)인 ‘박승직 상점’을 연 지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두산은 별도의 행사 없이 조용하게 넘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는 이날 사내에 배포한 기념사를 통해 “창립 12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또 한 번의 힘찬 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두산이 걸어온 120년 역사를 돌아보면 이보다 더한 고비도 수없이 많았다”면서 “두산은 버텨온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세계로 무대를 넓혀왔고 이것이 두산의 저력”이라고 역설했다.
박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고 박두병 창업 회장의 맏손자다. 박승직 창업주를 기준으로 하면 두산가 4세다.
두산그룹은 박승직 창업주와 박두병 초대 회장을 거쳐 3세대인 박용곤(1981∼1996년), 고 박용오(1997∼2004년), 박용성(2005년), 박용현(2009∼2012년), 박용만(2012년 4월∼2016년 3월)으로 이어지는 ‘형제 경영’의 전통을 지켜왔다.
상점은 1946년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상호를 두산상회로 바꿨다. 두산(斗山)은 박승직 창업주가 지어준 상호로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다.
박두병 회장 아래 두산상회는 1950년대 무역업과 OB맥주, 1960년대 건설, 식음료, 기계산업, 언론, 문화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연이어 진출했고 전문 경영인 제도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두산그룹의 기틀을 다졌다.
두산은 창립 100주년을 앞둔 1995년 자체적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한국3M, 코닥, 네슬레 등 식음류 사업과 OB맥주를 팔아 재무구조를 안정화했다.
이후 외환위기 불경기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절실했던 두산은 인프라 지원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두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며 소비재 중심의 사업 구조를 중공업 중심으로 빠르게 탈바꿈했다.
그 결과, 2000년 3조4000억원이던 매출이 10년 뒤 23조원으로 급성장했고 해외 매출 비중이 1998년 12%에서 2015년 64%로 높아졌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장기 불황으로 B2B 산업의 침체기가 오면서 다시 한 번 시련을 맞았다.
두산은 이에 2014년부터 선제 구조조정에 돌입, 지난 1분기 전 계열사가 흑자 전환했고 2분기에도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올해 취임한 박정원 회장은 지난 3월 취임사에서 두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룹 재무구조 개선 △신규사업 정착 △현장 중시 기업문화 등 세 가지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박 회장은 연료전지와 면세점 사업을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발굴해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는 “모든 직원의 노력으로 올 상반기에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뒀고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사실상 마무리 지어 한층 단단해진 재무 기반을 마련했다”면서 “하반기에는 안정된 기반을 바탕으로 영업 성과를 높이는데 보다 주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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