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선 기자]
책은 사회의 차별이 상상의 산물이라며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예로 들면서 계급이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하는 ‘청결과 불결’의 개념이 핵심 요소가 됐다고 설명한다.
경건한 힌두교도가 다른 카스트 사람과 접촉하면 오염될 수 있다는 식의 아이디어가 모든 사회에서 사회 정치적 구분을 강제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에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이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책은 지적하고 있다.
본관을 점거했던 재학생과 졸업생이 승리한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명분이나 취지와 별도로 자발적인 조직의 색다른 시위 방식이 통했을 뿐이다.
기존의 운동권에서 보여줬던 계획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가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본관을 점거했다는 사실에 자신들 역시 놀랐다고 한다.
일방적인 사업 추진에서 나온 부작용으로 이대 사태가 벌어지면서 우수한 재원인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졸업생들 150명이 2017학년도 이대에 진학할 기회는 줄어들게 됐다.
이화여대가 그만큼 손해를 봤고 재학생과 졸업생들도 우수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기회를, 유능한 후배를 배출할 기회를 놓쳤다.
학교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에 반발한 것은 명분이 되지만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구시대적인 편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의 와중에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예전의 실업고 출신들에 대한 편견에서 함께 하기 싫다는 ‘이대 순혈주의’가 시위 확산의 계기가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취업이 보장되는 마이스터고에 얼마나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는지 알지 못해 그랬다면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이번 사태의 큰 원인 중에는 일방적인 정부와 학교의 사업 추진에 대한 불만이 쌓였던 탓도 컸다.
등록금을 맘대로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교 발전을 위해 대학들은 재정지원 사업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처럼 차라리 재정 지원을 받지 않고 등록금을 올려 받을 수 있는 자율형사립대학 모델이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목적사업비가 아닌 인건비와 운영비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재정지원 사업 예산을 늘리는 방향의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방안을 교육부가 공개하기도 했다.
대학 총장들이 모인 한 포럼에서 ‘교육부가 무섭다’면서도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했던 이가 이번 사태가 불거졌던 이화여대의 최경희 총장이었다.
교육부의 눈치는 점점 봐야 하고 마음대로 움직이기는 어려운 사정을 그는 토로했었다.
교육부의 정책이 최 총장을 코너로 몰았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재정지원 사업, 대학구조개혁의 부작용에 대한 반발이 학벌주의와 맞물리면서 이번 사태가 일어났다.
교육부의 사업 선정 평가 과정에서 학내 의견수렴 과정에 대한 평가 반영 비중은 크지 않다.
교육부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며 문제를 회피한다.
이대는 이미 산업수요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프라임) 사업 신청 때부터 학내 갈등을 겪으면서 불만들이 쌓여 왔었다.
프라임 사업과 관련해서도 이공계 정원을 늘리면서 인문계 정원이 줄어들 경우 오히려 몇 년 후 이공계 출신 학생들의 취업률이 떨어지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 주도의 정책 추진과 대학의 처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시위 재학생과 졸업생도 '순혈주의'가 아니냐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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