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은주 기자 = "다른 형태로 국민들을 지켜보겠다"
영상을 통해 대중 앞에 선 아키히토 일왕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80세가 넘는 고령으로는 일왕의 임무를 다할 수 없는 만큼 황태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주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 "책임감 갖기엔 고령이 부담...국민 이해 바란다"
NHK, 지지통신 등 일본 현지 언론이 8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일왕은 이날 오후 3시 TV 중계를 통해 "일본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본인도 80세를 넘겼다"며 "헌법상 상징적인 의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전력을 다해 국무를 처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퇴위 의사를 밝혔다.
약 10분 길이의 이 영상은 전날인 7일 황족이 머무는 궁내청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예상대로 일왕은 이 자리에서 '양위', '퇴위' 등의 직접적인 표현은 삼갔다. 헌법상 일왕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만큼 퇴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 추후 법적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NHK 등은 영상 중계를 앞두고 궁내청 주변에는 관광객 등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일왕 퇴위에 관심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일왕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연로한 만큼 건강을 돌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왕은 82세인 지금까지도 많은 공무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최근 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일왕이 영상 메시지 형태로 국민에게 직접 입장을 전달하는 것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희망 전달 메시지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른바 전쟁 헌법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개헌 의지에 제동을 걸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도 흘러 나오고 있다.
◆ 200년 만에 '생전 양위'...여성 승계 가능성에도 집중
일왕이 생전에 왕위 계승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힌 데 이어 한 달여 만에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일본 왕실의 제도와 구성 등을 정해 놓은 '왕실전범'의 개정도 불가피해졌다. 왕실전범에 따르면 일왕은 생전에 양위를 할 수 없다.
현재 왕위 계승 1순위는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다. 만약 왕위 계승 작업이 순조롭게 이어지면 약 200년 만에 생전 퇴위가 이뤄진다. 지금까지 일왕이 살아 있는 동안 왕위를 넘긴 것은 에도시대 후반기인 1817년 고가쿠(光格) 일왕(1780∼1817년 재위)이 마지막이었다.
향후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제한하기 위해 황실전범 개정보다는 특별법을 만들자는 의견도 일부 나오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든 퇴위 후 일왕의 신분과 처우, 칭호 등이 교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또 왕실전범 제정 이후 처음으로 여성 일왕이 인정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황실전범 개정 제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집권했던 지난 2005년에는 여성 황족이 비황족과 결혼해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을 목표했지만 신중론이 제기되면서 보류됐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집권하던 지난 2011년에도 황족 감소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여성 황족 승계가 가능하도록 황실전범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개정안은 막바지 검토 작업까지 이르렀지만 이듬해인 2012년 이후 아베 정권이 출범함에 따라 개정 작업이 백지화됐다.
일본 정부는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면서 각계 대표로 구성된 지식인 회의를 설치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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