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한국무역협회(韓國貿易協會)는 1953년 목당(牧堂) 이활(李活)·나익진(羅翼鎭) 팀이 물러서고 목당이 1960년 재등장하게 되는 7년 사이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회장이 앞서 말한 대로 임문환(任文桓)·최순주(崔淳周)·강성태(姜聲邰)로 빈번히 바뀌는 바람에 운영진 구성에도 이질성을 갖게 되었고 체질의 변화가 부득이했다. 목당이 들어갔을 때 상근부회장(常勤副會長) 정운근(鄭雲近)과 전무이사 김봉진(金奉鎭), 상무이사 오학근(吳學根)으로 운영진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6월에 들어가서 김봉진이 사임하게 되어 오학근이 후임 전무가 되었는데 8월에는 상근부회장 정운근 마저 사임했다. 이리하여 후임으로 이동환(李東煥)이 들어왔다.
그런가 하면 부회장 주요한(朱耀翰)과 조영일(趙榮一)이 사임하고 오정수(吳楨洙)·김광균(金光均)으로 교체되었다. 세테(世態)의 변화가 협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전날의 단순한 운영체계가 허용 안되는 복잡성을 띠고 있었다. 임원회(任員會)에 부의되는 안건만 하더라도 ICA 민수불(民需弗) 공매(公賣)를 둘러싼 실수요제(實需要制) 문제 등 회원 상사 사이에 이해가 대립되어 회의는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인기품목인 ICA 비료 자금 낙찰에도 담합이 있는가 하면 외환종별(外換種別)에 따른 대상품 수입에도 업계의 이해가 엇갈리는 등 업계의 이견(異見)을 조정하는 안건이 중요사항이 되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목당은 임원회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시키는 방식은 매양 똑같았다.
“임원회를 개최합니다. 부회장 안건을 설명하십시오.”
그리하여 안건의 설명이 끝나면 토의에 들어가는데 발언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토의는 계속된다. 오전에 열린 임원회가 저녁때까지 계속될 때도 있다. 지루한 회의에 활력을 집어넣기 위해 목당이 시치미를 떼고 농을 거는 상대는 의례 오정수였다. 이들은 장단이 맞았다. 오정수가 “영국 신사는 그렇게 하는 건가”하고 던지면 목당은 “미국 양반은 어떻게 한다는 거요?”하고 입씨름이 벌어지는가 하면 “사돈 문제로 돼지를 기르는 사돈(飼豚) 말이야, 어쩐지 돼지와 닮았더라(似豚)”하는 식으로 한바탕 지리한 회의 공기를 바꾸어 놓게 마련이었다.
그러고는 또 토의에 들어가는 것이다. 엇갈린 문제를 확실히 해놓기까지 회의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어쨌든 1960년에는 무역업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4·19 혁명 이후 새 정부가 경제 제1주의 하에서의 환율의 단일화(單一化) 및 현실화(現實化) 조치, 그리고 대일통상(對日通商)의 정상화를 꾀했지만 경제상태의 불안상태는 그 도를 더하여 갔으며 수출외환(輸出外換)의 매상제도(買上制度) 실시, 수입금융의 폐지 등은 업계에 가일층의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임원회는 업계의 당면한 애로를 타개하고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목당은 1961년 4월 27일에 가졌던 제19회 정기총회 개회사(開會辭)에서 수출진흥안의 강력한 추진을 정부 당국에 부탁하여 주목을 끌었다. 수입무역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전반적인 경제가 답보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출무역만은 그래도 3200여만 달러의 실적을 올림으로써 수년래의 최고의 계수(計數)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금액은 국민 1인당 겨우 1.45달러 꼴이 되는데 수입의 경우와 비교하여 본다면 연간 수입총액 3억2000만 달러, 국민 1인당 14.55달러의 10분의 1에 불과한 것이 되며, 수출의존도(輸出依存度)가 작년에는 2%에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 경제 여건으로 볼 때 이 의존도가 높아져야 될 것이므로 수출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그 얼마나 중요하고도 화급한 과제이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수출이 증가되었다는 사실 외에도 우리나라는 필리핀이나 자유중국(현 타이완) 등 자유 우방과 통상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수출 증진의 길을 닦았으며 부정축재 처리 특별법도 경제계의 빈축을 상당히 방지할 수 있는 법으로 제정되었고, 또한 최근에는 일본의 대한수출(對韓輸出) 승인제의 폐지를 봄으로써 업계로 하여금 상당히 명랑화 시켰던 것인데 이러한 지난 1년 동안의 많은 변화와 곤경 속에서도 우리 협회가 별 대과없이 지내온 것은 정부 당국과 회원 여러분의 절대적인 성원의 덕분으로 알며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목당은 협회 일을 맡으면서 생각해 온 것은 실효있는 수출진흥안이었다. 수출시장의 조사와 더불어 위탁가공 수출 무역제도를 확립 활용하여야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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