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영방송 BBC는 16일(현지시각) 가족과 함께 제3국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의 이름은 태용호(Tae Yong Ho), 직급은 부대사(deputy to the ambassador)라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태용호의 막내아들과 같은 반 친구를 인용해 태용호 가족이 7월 중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태용호는 지난 10년 동안 부인, 자녀들과 함께 영국에 거주하며 주영 북한대사관의 홍보 업무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몇 주 전 가족과 함께 대사관이 있는 런던 서부에서 자취를 감췄다.
태용호는 북한 엘리트 출신 외교관으로 북한의 이미지를 홍보하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오보와 오해를 바로잡는 일을 책임져왔다.
BBC의 서울·평양 주재 특파원인 스티브 에번스에 따르면 그는 올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에번스는 “그가 가족과 함께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북한 체제 선전에 적극적이었던 태용호가 갑자기 탈북 망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북한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해당 직무에서 마음이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BBC는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태용호의 이번 망명 신청을 최근 잇따른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행렬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 체제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최근 일부 고위 장성급 인사가 탈북했으며, 홍콩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18세 북한 수학 영재는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 채택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해외 자금줄이 끊긴 것을 북한 고위층 탈북 행렬의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유입되는 외화벌이가 차단되면서 고위급 인사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탈북을 감행한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정권이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명목으로 책임자들을 처형할 경우 탈북 행렬은 더욱 확산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특히 태용호의 이번 망명 신청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북한 외교관 중 고위급인 데다 북한 체제를 서방에 선전하는 대표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외무성 내에서도 서유럽 최고 전문가로 평가된다.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아시아 전문가 존 닐슨-라이트 박사는 BBC와 인터뷰에서 “만약 고위 외교관의 망명이 사실이라면 북한 정권에 깊은 타격을 미칠 것”이라며 “김정은 체제에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고위층의 연이은 탈북 행렬에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다양한 직업군에서 탈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수치로 밝히긴 어렵지만 (증가) 추이는 틀림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북)제재 국면과 연관이 있다는 직접적 증거를 잡기는 어렵지만 상당한 제재 국면에서의 압박감 때문에 넘어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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