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개봉된 영화 ‘올레’(감독 채두병)는 인생에 적신호가 뜬 세 남자의 일탈을 그린 작품이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 대학 선배 부친의 부고 소식에 제주도로 모인 세 친구의 일들을 엮은 작품이다.
극 중 신하균은 까칠한 남자 중필을 연기해냈다.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비슷하지도 닮지도 않은” 인물이지만, 신하균은 자신만의 색깔로 중필을 채워나갔다.
“채병두 감독님은 중필이 청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청년의 모습? 이걸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걱정이었죠. 고민 끝에 여자를 대할 때 수줍어한다거나 머뭇거리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로 했어요. 특히 감독님은 여자들 앞에서 보이는 미소를 좋아했죠. 그런 게 쌓이면서 캐릭터가 조금 더 귀여워 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초반엔 채 감독이 생각한 중필과 신하균이 생각한 중필 사이에 큰 간격이 있었다. 청년 같은 중필을 원했던 채 감독과 딱 그 나이 또래를 그리고자 했던 신하균 사이의 간극이었다. 그 인물의 간격을 눈치챈 것은 “차를 대여하는 장면”이었다.
“극중 수탁(박희순 분)을 몰아붙이며 구박하는 장면이었는데 제 연기 톤이 감독님의 생각보다 좀 더 셌었던 거죠. 머리를 때리거나 화를 내는 게 생각보다 거칠게 나와서. 하하하. 채병두 감독이 정말 노련하다 생각했던 건 바로 이때였어요. 사실 연출자가 정해놓은 톤에 변화가 생기면 당황하실 법도 하잖아요? 하지만 감독님은 ‘하균 씨 생각대로 가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중필이 나오게 된 거였어요. 친구들 앞에서의 행동과 여자들 앞에서의 행동이 큰 차이를 갖게 된 것도 그런 거였죠. 이상하면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잘 나온 것 같네요.”
채병두 감독은 중필의 얼굴에 깃든 청년의 모습에 집중했다. 배우 신하균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면면들을 포착한 것이다. 청년 같은 그의 면모들은 영화의 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흔 살을 앞둔 아저씨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 천방지축 소년 같은 친구들처럼 보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영화는 더 산뜻해질 수 있었고, 밝고 유쾌한 분위기에 일조하게 됐다.
“저 역시 중년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그 철없는 모습, 옛 추억 같은 정서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 걸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우정과 사랑,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거죠. 거기에 현실의 답답함을 벗어나고픈 마음도 곁들여서요. 일탈 아닌 일탈과 해방감이 딱 우리 나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어요. 제 모습과는 다르지만, 주변 친구들에게는 많이 볼 수 있는 이야기였거든요. 시나리오를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친구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중필·수탁·은동 같은 면모가 있다. 신하균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는 은동(오만석 분) 같은 중간자적 입장인 그는 사랑에 관해서는 중필과 같았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된 고백도 하지 못했던 용기 없던 바보였다"는 그는 “솔직하지 못하고 꾸미려고만 했다"라고 어린시절에 대해 수줍게 말했다. 현재의 신하균은 점차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으며, 있는 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 생활이 길어질수록 고민하는 것들도 많아지죠. 새로운 걸 찾았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 그것에 대한 공감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들은 공감할 수 있되 영화적으로는 신선한 표현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캐릭터가 새로우면 더 좋을 것 같고요. 사실 그건 의무죠.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고 같은 이야기일지라도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려드리는 것이요.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낯섦과 공감. 두 이질적 단어는 신하균에겐 중요한 키워드다. 이는 그의 필모그래피와도 깊은 연관이 있으니 말이다. 일상적 캐릭터와 비일상적 캐릭터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에게 의무와 부담감에 관해 물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상한 역할을 많이 했었죠? 하하하. 어릴 땐 그런 영화들을 좋아했었어요. 소위 B급 무비라고 하죠?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며 공격적인 영화들. 주류에 얽매이지 않는 용기 있는 영화들이요. 그 상상력과 만듦새에 굉장히 호감을 느꼈는데 마침 제가 연기를 시작하던 시절, 그런 영화들이 많이 나왔었어요. 요즘엔 그런 캐릭터를 만날 만한 기회가 적지만 그로테스크한 영화들도 재미있다면 하고 싶어요. 장르나 그 작품을 정의 내릴 수 없는 영화요.”
어느덧 데뷔 18년 차. 늘 청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잊고 있던 부분이었다. 이제 마흔두 살을 맞은 그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직 뒤돌아볼 나이는 아닌 것 같아요. 전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되게 잘 잊어버리거든요. 옛날 생각을 하면 후회되는 일들도 많고 행복한 순간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부족하고 힘들었던 것을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요. 미래도 마찬가지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먹고, 취하고 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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