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한중관계, 新지도가 필요하다] 기획시리즈를 통해 한·중 두 나라가 사드 파고를 넘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 한중관계가 틀어진 계기가 사드 배치라는 주장이 많다. 중국이 너무 급격하게 태도를 바꾼 것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과 중국은 1949년 신중국 건립 이후 서로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그렇지 못하다. 수천년 동안 지정학적 이유로 서로 소통해 왔고 기쁘고 슬픈 역사를 함께한 이웃이지만, 봉건제와 절대왕조를 벗어나 처음으로 공산당 중심의 지배체제를 시작으로 공산주의 국가로 막을 올린 중국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변화한 한국은 반세기 동안 단절돼 있었다. 한국은 고대의 중국을 생각하고, 중국도 과거의 한국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사드 문제는 이처럼 한국과 중국의 다른 입장차이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경우 사드 배치는 북한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한국의 안보 자구책인 반면, 중국은 미·중관계의 전략적 경쟁구도로 접근한다. 특히 민감한 미사일 방어시스템에 관한 미·중의 논쟁 사이에서 한국이 미국의 편을 들었다는 입장으로 이해되기 싶다. 사드를 두고 한·중 양국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이다.”
▲ 한·중 양국이 ‘오해’를 ‘이해’로 잘못 착각했던 것 같다. 특별히 중국이 우리를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동안 한중 간 여러 분쟁이 있었다. 경제부문에서는 마늘분쟁, 사회·문화부문에서는 동북공정이라는 역사문제가 있었다. 군사·안보 부문에선 사드 배치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즉 상대를 서로 이해했다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기 전에 서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마늘분쟁을 보면 한국은 국내 정치적 요소에서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당시 이 문제를 한·중무역 역조현상에 초점을 맞췄다. 즉 서로가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봤던 것이다.
△동북공정도 한국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의 한 부분을 중국이 뺏어갔다고 보고 있는 반면, 중국은 국내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사적이고 국내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서로 이해를 했다면 중간에서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공집합적인 부분을 찾아 해결했을 텐데 ,서로가 자신들의 입장이 맞다는 생각 아래서 상대를 설득하려고만 하다보니 부딪혔던 것 같다.
△사드 문제도 한국이 우리의 안보에 관한 입장을 ‘3No(요청·협의·결정 없음)’라고 하지 말고 미리부터 중국에 이야기하고 중국도 문제가 되는 부분을 솔직하게 한국과 논의했다면 이 문제가 지금처럼 경색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역시 이 문제를 미·중 간 전략적 입장에서만 보려 했던 문제가 있다.다시 말해, 한·중 간 사드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는 급격히 변화했던 반세기 동안 서로 단절됐었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게 도리어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다.”
▲ 한·중관계에서 우호관계만을 강조하다 보니 내재돼 있는 문제를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언제든지 문제점이 일어날 수 있는, 또 터져나오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에 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애써 묵인해 왔던 것이 터져나오면서 한·중관계에 큰 장애물이 되는 것 같다. 사드 배치 문제나 언제든지 터져나올 수 있는 동북공정 문제,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의 변화 속에서 한·중 경제마찰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부의 힘에 의해 이 문제가 터져나왔을 때 도리어 당황하게 되고, 상대를 이해 못하고, 갑자기 나타난 문제로 인식함으로써 양국관계의 장애가 되는 것이다.”
▲ 내재된 이들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그동안 한·중관계는 정부가 주도해 오는 상황이었다. 92년 수교 이후 사실상 한·중관계는 정부 주도의 관계였고, 최근에 와서야 그것이 사회·문화·인적교류의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부 대 정부가 주도해 나가는 우호관계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한·중 우호관계의 틀이 이제 인적교류와 사회·문화 등 다방면이고 다원적 주체들이 한·중관계를 이끌어 가는 그런 모습들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한·중관계 발전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사회 내부에서 끊임없이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
▲ 사드 문제 이후 파생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오해하는 것일까.
“사드 문제가 발생한 후 한류콘텐츠 사업 문제나 화장품 산업규제, 전기차 베터리 문제들이 나왔다.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중국의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즉, 중국 시장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들이었다. 중국은 이미 보호무역주의와 비슷하게 자국기업을 보호하는 정책들이 나타났고, 중간재 제품들에 대한 국산화 작업을 정책적으로 실행해 왔다. 또 완제품에 관한 한국의 화장품, 문화콘텐츠사업에서 그 이익을 한국 기업들에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민족주의 감성들을 앞세운 그런 마케팅 전략을 써 왔다. 그러다 보니 한국 기업들이 쉽게 돈을 벌다가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에 다다르게 됐는데, 그것은 사드 배치 이후에 어려워졌다기보다 좀 더 근본적으로 중국의 산업구조가 변하고, 중국이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한국 기업이 예전과는 다른 시장을 향해가는 마케팅 전략이나 기술경쟁을 해야 된다는 그런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 중국이 꿈을 꾸면 꿀수록 우리는 왜소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현명한 대처가 쉽지 않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다 보니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중국과 마찰 없이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가 참 어렵다. 우리 국력의 한계다. 미·중이라는 두개의 초강대국이 전략적 경쟁을 벌이니 우리가 능력의 한계를 점점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더 어려운 것은 미·중 사이에 있는 주변 아시아 국가들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들 어떤 나라도 분단국가가 아니고 핵의 위협을 받고 있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중국과도 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어떤 나라와도 입장이 다른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국 특유의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그런 외교적 노선을 찾아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구도는 이제 어려워진 것 같다.
“한국은 이원외교 즉, 미국의 지정학적 리더십과 중국의 지경학적 러디십인 두 가지 리더십 등 동시에 인정하고, 한국의 국가목표를 뚜렷하게 해야 한다. 그 뒤 한국의 국익을 올바르게 정의하고 모든 현안에 대해 올바른 입장표명을 한다면 중국, 미국과 협상하고 논의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마찰, 갈등, 관계 경색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본의와 달리 미국 혹은 중국 편에 설 수 있다. 초반에는 오해와 갈등이 있겠지만 한국이 명확한 입장과 분명한 국정철학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미국과 중국은 점차 한국에 대한 압박을 더 강화할 것이다. 압박을 강화했을 때 한국이 자기편에 서지 않으면 사드 문제와 같이 손해를 본 쪽과는 항상 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다.”
▲ 정부의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단적인 예로 현재 박근혜 정부는 색채로 본다면 보수정권이지만 중국과도 가깝고 여전히 대북 강경책을 펴고 있지만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고, 미국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이전과 비교해 보면 커다란 굴곡은 있었지만 점차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이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대미·대중정책에서 실험해 볼 수 있겠지만 점차 국론이 모아지고 그 중에서 나은 방향을 찾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우리의 나아갈 목표를 정하고 그 국가목표 하에서 국론이 통일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이후에 국가이익과 국가전략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국론합의가 되지 않게 되고, 그 경우 향후 미·중의 압력이 더 커진다면 정부의 색채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강정숙 기자 shu@
▲ 김한권 교수는
김한권 박사는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에서 정치학 학사와 행정학 석사(MPA)를, 미국 American University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했다. Post-Doc과정을 중국 칭화대 (清华大)에서 마치고, 칭화대의 국제전략과 발전연구소의 연구위원과 북경대 국제관계학원에서 연구학자를 지냈다. 이후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 겸 중국연구 센터장과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